한국영화의 풍운아 신상옥 - 조희문
	2006-04-14
한국영화의 풍운아 신상옥 극적인 순간을 만나면 ‘영화 같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웬만한 영화는 영화인 신상옥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재현하기 어렵다. 그는 일제 시대에 청년기를 보냈고, 해방된 서울에서 영화인의 길을 걸었다. 감독의 명성을 쌓기 시작함과 거의 동시에 터진 여배우 최은희와의 스캔들 같은 사랑, 자신의 영화왕국 신필림의 설립과 제왕 같은 활약, 뒤따라온 몰락, 남북한 간의 긴장이 치열하던 시기의 납북과 북한에서의 활동, 이어지는 자유세계로의 탈출과 미국 정착, 할리우드 영화계에서의 부활과 한국으로의 귀환…. 한국영화사를 해방 전후로 대분한다면 신상옥은 해방후 현대 한국영화의 대문을 열어젖히며 한 시대를 이끈 풍운아였다. 1926년 10월18일,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한 그는 도쿄 미술전문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1946년 고려영화협회라는 영화사에서 미술감독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디뎠다. 몇 년의 수련과정을 거친 뒤 1952년 ‘악야’라는 영화로 감독의 길을 걸었다. 이때부터 그는 한국영화계의 중심에 다가섰고,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끌었다. 서울영화사, 신상옥프로덕션 등의 이름으로 자신의 영화사를 운영했던 그는 ‘동심초’ ‘어느 여대생의 고백’ ‘로맨스 빠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같은 영화들이 흥행에서 성공하면서 전설같은 영화사 ‘신필림’의 탄생 기반을 다졌다. 특히 컬러 시네마스코프 기술을 도입한 ‘성춘향’은 신상옥을 당시 한국영화계의 ‘제왕’으로 등극시키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같은 시기에 경쟁했던 홍성기 감독, 김지미 주연의 ‘춘향전’과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성춘향’은 같은 소재, 당대 최고의 감독·배우라는 점에서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처럼 보였고, 그는 폭발적인 성공과 함께 개선했다. 1960년대 한국영화는 양적 팽창과 다양한 작품, 인물의 등장으로 도약을 모색하던 시기였지만 동시에 체계적인 성장을 유도하려는 정부의 정책이 영화계를 통제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화법 제정, 난립하던 영화사를 일정한 시설 기준에 맞춘 통폐합 작업, 제작과 수입의 일원화, 영화의 국민계몽과 정책 홍보수단 활용 같은 시도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신필림은 성장을 거듭했지만 한편으로는 과도한 성장 때문에 붕괴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았다. 영화 활동의 침체기를 맞던 그가 다시 충격의 중심에 떠오른 것은 갑작스러운 납북. 1978년 1월13일, 합작영화 협의차 홍콩에 머무르고 있던 최은희씨가 실종된 데 이어, 뒤따라갔던 신상옥 감독 또한 7월19일에 연락이 끊어졌다. 두 사람의 실종은 북한 공작원에 의한 납치로 밝혀졌지만 그들은 북한에서 영화 활동을 계속했다. 신 감독은 납북된 이후 당시 노동당 총비서였던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불가사리’ ‘사랑 사랑 내사랑’ ‘소금’ 등 7편을 연출했고 13편을 지도했다. 남한과는 다른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납북 8년 만인 1986년 3월1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탈출을 시도, 미국대사관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면서 또 한번 뉴스의 인물로 떠올랐다. 250여 편을 제작하고, 75편을 연출한 신상옥 감독의 영화세계는 멜로·액션·사극·홈드라마·전쟁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재미와 품격을 배합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가 신필림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열정과 집념, 재능 덕분이었지만 스스로 모든 것을 다하고자 했던 부분은 한계로 작용했다. 때로는 주변의 반발을 불렀고 끝내는 자신의 영화세계를 접어야 했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어쨌든 그로 인해 한국영화는 풍성했고, 아름다웠다. ‘예술가가 되고 싶어했던 사업가’이거나 ‘사업가가 된 예술가’라고 할 그의 영화인생은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반을 만들었고, 한 시대를 대표했으며 이제는 전설이 되어 그림자로 남게 되었다. 부디 평안히 쉬시기를…. 조희문 (상명대 교수·영화학, 영화평론가 / 바른사회 문화예술포럼 회장) 출처 - 문화일보 2006. 4. 1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