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에서 이념정당으로 - 황인정
	2002-09-14
붕당에서 이념정당으로 요사이 정치에 대한 불신이 심하다. 그것은 정치가 제 몫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진정한 정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형태의 '자원'을 배분.활용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가장 손쉽고 자유스럽게 이뤄지는 일상 시스템이 '시장(市場)'이다. 바로 가격의 자율조정 기능이다. 국민의 뜻 반영안된 정책 그러나 자유.공정 경쟁이 보장되지 않아 '시장실패'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한쪽은 덕을 보지만 다른 쪽에서는 공정성.투명성.형평성 등의 문제 때문에 그 결과를 승복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갈등'이다. 이 경우 정부의 시장개입은 불가피하다. 정부가 이를 외면할 때 무정부 상태라고 한다. 국민들이 세금을 내고 법을 지키는 이유는 정부가 갈등구조를 해결하고 경제사회질서의 안정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시장실패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정책'이다. 정책은 시장기능을 살리기 위한 규제개혁 내지 제도개선으로, 또는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이러한 정책은 정부가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정부정책의 밑그림과 기준은 과연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민주국가에서 그것은 국민의 몫이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다. 선거 자체는 정치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주로 선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정치가 제 역할을 잘 하려면 선거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판가름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선거가 사람을 뽑고 권한을 위임하는 일은 해왔지만 정책방향에 대한 국민적 지지나 선택을 매듭짓는 역할은 미미하다. 그 이유는 정책정당.이념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당들은 학연.지연 등 친소관계로 얽힌 붕당이거나 결과적으로 특정지역을 대변하는 지역정당의 색채가 짙은 것이 사실이다. 후보를 지명한 정당들은 표가 될만한 정책은 대부분 서로 모방하기 일쑤였고, 그들이 제시한 정책공약의 내용은 차별화되지 않고 앞뒤가 상충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특정집단들은 비록 그들의 지지로 정권을 맡은 정부라 하더라도 그들 이익에 반하는 정책이 나오면 한사코 반대하게 되고 또 다음 선거에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목소리 큰 쪽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하여 이른바 정치논리가 판을 치게 되고 결국 진정한 정치는 실종되고 정책은 표류하게 되며 갈등은 꼬여만 간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노사갈등이요, 농업구조 조정정책이며 건강보험 통합이다. 선거공약.노선 차별화를 그러나 선거가 정책기조에 대한 국민의 선택을 통해 수권정당을 결정해준다면 국정을 책임 진 정권이 국민의 뜻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국민이 선택해준 기준에 따라 이해갈등을 조정하며, 국민의 힘을 믿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선거를 통해 정치인 또는 정당의 이념노선에 대한 국민적 선택이 이뤄질 때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가 실현된다. 그래서 선거가 정치의 중심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가 제 구실을 다하고 진정한 민주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당들도 서로 다른 이념노선을 지향하는, 이른바 차별화된 정책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책의 차이를 부각하기 보다는 후보자 개인을 더 부각한 가운데 국민의 선택을 호소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권이 귀속되게 돼있다. 과연 대통령중심제 권력구조 아래서 이러한 이념정당의 정착을 기대할 수 있을까? 황인정 (강원발전연 원장.전 KDI원장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중앙일보 2002. 9. 1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