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직원들과 점심을 같이 하다가 요즘 아이들의 식사습관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한 직원의 아들은밥 먹을 때 공기를 손에 받쳐들고 먹는다 한다. 알고 보니 그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짱구'를 흉내낸 것이었다. 일본에서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한 편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아이들의 식습관을 바꿔놓은 것이다. 하긴 아이들의 문제만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2월 14일이면 초콜릿을 사야하고, 3월 14일이면 사탕을 반드시 선물해야친구와 애인, 남편과 아내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지 않는가. 나이 쉰을 넘긴 집사람도 똑같은 소리를 다 하는 세상이니말이다.
지금은 문화전쟁의 시대다. 문화와 관련된 상품이나, 사고방식들이 사람들의 행동과 생활습관까지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측면이 있다.
먼저 문화가 경제의 엔진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90년대 말부터문화산업이 국가경제의 주요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을정부가 주목했기 때문이다. 문화와 경제는 이미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맞물려 돌아가고 있으며, 이제는 꿈과 이미지의 서비스산업이 제조업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보 기술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양상은 더욱 빨리 확산되고 정착될 것이다.
아이들이 다른 나라 애니메이션을 보고 생활습관이 바뀐다는 사실은, 현재의 경제 시스템 속에서는 그 나라 문화상품의 잠재적이면서 안정적인고객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식습관만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떼쓰는 방법, 친구들과 노는 방법, 옷입는 방법, 유치원 문화, 심지어 교통질서까지도 애니메이션 속의 그것을 익힘으로써 그 나라의 문화에 익숙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그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그려진 과자, 옷, 문구, 장난감 등을 소비함으로써 발생하는 직접적인 이윤도 만만찮은 규모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우리나라도 문화상품 수출국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90년대 말 중화권을 중심으로 활성화된한류는 문화상품 영역뿐만 아니라 수출산업 전반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하고 있다. 한류 스타를 통해 형성된 친밀감이 우리나라 수출상품들에대한 현지 소비자들의 구매활동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전세계 30만명이 동시사용자로 접속할 정도로세계적인 게임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런 사레들은 우리의 문화상품이 얼마든지 세계로 뻗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측면은 문화정체성 문제다. 문화가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기도하지만, 마냥 경제의 논리에 내맡길 수 없는 이유는 문화정체성 때문이다.
문화상품은 상품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상품을 수출한 국가의 가치관이자 세계관이기도 하다. 중세시대에는 십자군을 앞세워 사상과 문화가 전파됐다면, 현대에는 '헬로우 키티'와 '곰돌이 푸'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와 세계관이 전파되고 시장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와 문화가만나 서로 발전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문화상품을 매개로 한 문화접변현상은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 접변이 오히려 침투가 돼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정체성을 훼손하는 수준이라면 문제가 있다. 특히 이윤창출이라는 명제 하에 경제적인 논리만을 앞세운다면 물질만능주의로 대변되는 상업의 논리가 여과 없이 그대로 우리 생활 속으로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밥보다는 햄버거와 피자에 익숙하고, 디지몬 장남감과 해리포터 지팡이어야만 선물로 만족하며, 유치원에서 '영희'와 '철수'보다는 '캐롤'과 '앤디'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고급스럽게 느끼는 아이들을 눈앞에 두고 과연 문화다양성만을 주장할 수 있을까. 왜곡된 역사의식이 바탕에 깔린일부 일본 애니메이션의 유입을 시장의 논리만 믿고 허용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여기서 문화국수주의를 논하고자 함은 아니다. 우리도 이미 문화상품의 단순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큐빅스의 예처럼 까만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한 우리의 주인공이 이미 미국 어린이들의 마음을사로잡고 있고, 푸른색 아기공룡 둘리가 독일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는소식도 들린다.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되 상대방의 정체성과도 조화를 이루는 상생의 전략이다. "오직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김구 선생의주장이 오늘의 문화산업에 시사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문화는 경제의 엔진이다.
<서병문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원장>
얼마 전 직원들과 점심을 같이 하다가 요즘 아이들의 식사습관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한 직원의 아들은밥 먹을 때 공기를 손에 받쳐들고 먹는다 한다. 알고 보니 그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 '짱구'를 흉내낸 것이었다. 일본에서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한 편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아이들의 식습관을 바꿔놓은 것이다. 하긴 아이들의 문제만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2월 14일이면 초콜릿을 사야하고, 3월 14일이면 사탕을 반드시 선물해야친구와 애인, 남편과 아내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지 않는가. 나이 쉰을 넘긴 집사람도 똑같은 소리를 다 하는 세상이니말이다.
지금은 문화전쟁의 시대다. 문화와 관련된 상품이나, 사고방식들이 사람들의 행동과 생활습관까지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측면이 있다.
먼저 문화가 경제의 엔진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90년대 말부터문화산업이 국가경제의 주요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을정부가 주목했기 때문이다. 문화와 경제는 이미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맞물려 돌아가고 있으며, 이제는 꿈과 이미지의 서비스산업이 제조업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정보 기술과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양상은 더욱 빨리 확산되고 정착될 것이다.
아이들이 다른 나라 애니메이션을 보고 생활습관이 바뀐다는 사실은, 현재의 경제 시스템 속에서는 그 나라 문화상품의 잠재적이면서 안정적인고객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식습관만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떼쓰는 방법, 친구들과 노는 방법, 옷입는 방법, 유치원 문화, 심지어 교통질서까지도 애니메이션 속의 그것을 익힘으로써 그 나라의 문화에 익숙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이 그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그려진 과자, 옷, 문구, 장난감 등을 소비함으로써 발생하는 직접적인 이윤도 만만찮은 규모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우리나라도 문화상품 수출국으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90년대 말 중화권을 중심으로 활성화된한류는 문화상품 영역뿐만 아니라 수출산업 전반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하고 있다. 한류 스타를 통해 형성된 친밀감이 우리나라 수출상품들에대한 현지 소비자들의 구매활동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전세계 30만명이 동시사용자로 접속할 정도로세계적인 게임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런 사레들은 우리의 문화상품이 얼마든지 세계로 뻗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측면은 문화정체성 문제다. 문화가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기도하지만, 마냥 경제의 논리에 내맡길 수 없는 이유는 문화정체성 때문이다.
문화상품은 상품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상품을 수출한 국가의 가치관이자 세계관이기도 하다. 중세시대에는 십자군을 앞세워 사상과 문화가 전파됐다면, 현대에는 '헬로우 키티'와 '곰돌이 푸'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와 세계관이 전파되고 시장이 확장된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와 문화가만나 서로 발전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문화상품을 매개로 한 문화접변현상은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 접변이 오히려 침투가 돼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정체성을 훼손하는 수준이라면 문제가 있다. 특히 이윤창출이라는 명제 하에 경제적인 논리만을 앞세운다면 물질만능주의로 대변되는 상업의 논리가 여과 없이 그대로 우리 생활 속으로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밥보다는 햄버거와 피자에 익숙하고, 디지몬 장남감과 해리포터 지팡이어야만 선물로 만족하며, 유치원에서 '영희'와 '철수'보다는 '캐롤'과 '앤디'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고급스럽게 느끼는 아이들을 눈앞에 두고 과연 문화다양성만을 주장할 수 있을까. 왜곡된 역사의식이 바탕에 깔린일부 일본 애니메이션의 유입을 시장의 논리만 믿고 허용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여기서 문화국수주의를 논하고자 함은 아니다. 우리도 이미 문화상품의 단순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도약하고 있다. 큐빅스의 예처럼 까만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한 우리의 주인공이 이미 미국 어린이들의 마음을사로잡고 있고, 푸른색 아기공룡 둘리가 독일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는소식도 들린다.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되 상대방의 정체성과도 조화를 이루는 상생의 전략이다. "오직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김구 선생의주장이 오늘의 문화산업에 시사하는 바는 결코 적지 않다.
출처 - 매일경제 2002. 4. 7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