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에 “한반도기”는 당치 않다. - 신일철 | |
2002-09-03 | |
아시안게임에 “한반도기”는 당치 않다. 아시안게임에 뒤늦게나마 북한이 참가하겠다고 신청해온 것은 우선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받아들이고 싶다.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은 한국이 주최국이고 우리 한국의 제2의 도시 부산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북한측이 이 모든 사실을 인식하고 참가를 결정하여 아시아의 대체육축전에서 온당하게 처신해 준다면 남북한간의 평화공존에도 기여하는바 클 것이기 때문이다. 6.29 서해도발에서 북한지도부가 저지른 큰 잘못을 너그럽게 접고 이 대회의 북한참가를 허용한 우리 정부와 대회관계 당국의 일대용단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분단과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겪게될 북한팀의 인공기와 국호, 국가 등의 쇼크에 대해 우리정부가 사전에 널리 국민적 합의를 얻을 준비된 결정인지는 회의적이다. 오히려 북한측의 정치적 처신에 말려들어 우리 사회내의 갈등을 증폭시키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바가 적지 않다. 원래 소위 “남남갈등”은 언제나 북한측이 그 원인제공을 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는 북한측의 정치색깔있는 대남 전술에 대처하여 우리정부의 “햇볕” 정책이 가진 정체성을 확인케 해주는 또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 첫 관문에서 북한은 부산 아시안게임의 개․폐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의 한반도기 사용을 제의해왔고 이런 상투적인 제의에 대해 우리정부는 고려중이라고 전한다. 북한의 이런 제의에 대해 우리정부는 더이상 좌고우면할 것이 아니라 그 대답이 분명하고 선명해야 한다. 그 참가를 애걸하는 저자세를 더욱 금물이다. 우선 아시안게임의 주최국은 대한민국이며 남북한 공동개최가 아니다. 그리고 이 국제경기에서 남북한의 합동단일팀을 구성한 것이 아니다. 북한이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겠다는 신청의 근본부터가 남북한 단일팀이 아니라 북한선수단의 단위로 오겠다는 것이 그 대전제이다. 북한은 무언가 크게 오해하고 있거나 아시아의 국제적 체육축전에 정치색깔을 넣어 낡은 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해보겠다는 순수치 못한 처신의 시작이 아닌가 우려된다. 우리 정부당국도 북한팀의 참가신청은 다름아닌 북한팀의 참가이며 국제적 관행상으로도 비록 개․폐막식에 국한해서도 한반도기의 사용은 가당치 않고 용허될 수 없다는 단호한 자세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내야 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선수단도 이 대회에 대한민국․태극기․애국가를 견지하고 참가하며 개․폐막식에서도 태극기․대한민국의 국가대표권은 포기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신성불가침의 주권행사이다. 오히려 정부는 이 대회에 참가하는 북한선수단과 응원단이 국제관행에 따르는 자기네의 상징사용에 대해 우리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북한측에 대해서도 온당한 처신을 할 것을 약속해주도록 당부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북한측이 국제행사의 영역 내에서 국제 스포츠정신에 합당한 행동거지에 이성있는 자제력을 견지하여 원만한 대회진행에 협력한다면 남북한간의 평화공존․민족화해에도 이바지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번 행사에서 북한선수단․응원단을 다른 국가 선수단들과 다름없이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 이 경기의 테두리 내에서는 한국은 태극기와 애국가, 국호를 견지하고 북한은 그네들의 인공기, 북한국가, 국호를 견지하는데서 아무런 문제없이 이 대회를 치룬다면 대단히 큰 민족평화적 소득을 얻게된다는 거시적 관점을 가져주어야 한다. 오늘의 남북한 관계에서 “베르린장벽”과 다름없는 벽을 넘는 과제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협약될 남북한간의 상호존재 시인의 가시적 실천을 재확인하는 일이다. 그 상호존재 시인은 북한이 이남에 “대한민국”이 있음을 시인하고 우리 한국도 이북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있음을 시인하는 평화공존적 실천이다. 6.15남북공동선언도 북한이 일방적으로 왜곡 해석하는 “통일선언” 또는 “연방제통일”의 합의가 아니라 그 문서의 전문과 서명난에 남북한 양정상이 각기 자기 국호를 가지고 서명한 사실에 그 기본정신이 있다. 그러나 6.15선언 1주년의 「노동신문」에서는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을 나타내지 않기 위해 그 선언문을 거두절미하여 5조만을 게재했다. 이것이 북한의 2중적 책략의 본보기이다. 이미 1991년 9월 남북한이 각기 자기국호를 가지고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유엔전당앞의 만국기 계양대에는 태극기와 인공기가 계양되어 있다. 세계각국과의 외교관계에서도 남북한은 각기 국호를 사용하고 있으나 오직 남북한 상호간에는 정식 국호의 호칭이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의 남북장관급회담에서도 북한 대표는 자기지도자 초상의 뺏지를 앞가슴에 차고 우리 정통인부장관은 태극기 뺏지를 패용했다. 금강산 등의 각종 남북한 회담에서도 “한국”이 있는 우리측 대표명찰에 “H사장” 등으로 “한국” 삭제강요는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남북한 실무협의에서 우리 한국측은 언론보도에서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한국에서는 북한팀을 “북조선” 또는 “조선”으로 북한의 언론매체에서는 우리팀을 “한국”팀으로 호칭하자는 제의를 해보았으면 한다. 북한언론이 아시안게임의 한국주최도 숨기고 그리고 한국팀을 “남조선” 또는 “남측”으로 고집하겠다면 우리언론도 계속 “북한”으로 호칭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좋은 계기로 삼아서 남북한 상호간에 정식 호칭을 정착시킨다면 평화공존의 상징적 행위로서 획기적인 신국면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간 관계규정의 허위의식부터 극복해나가야 한다. “통일”이나 “재통일”은 하나가 아닌 둘이 있다는 전체위에 서있다. 두 국제법적 국가 실체의 상호존재시인이 평화공존을 통한 통일의 초석이다. “법적”으로 du jure 두개의 존재가 상호시인됨으로서 “사실적(de facto) 통일상황”을 만들어 남북한간의 안부편지라도 주고받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편왕래도 겁먹고 못하는 북한측이 제의하는 “한반도기” 사용같은 위선적 책략에 우리 “햇볕” 정책은 더이상 밀려서는 안된다. 신일철 (고려대 철학과 명예교수 / 시민회의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