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피해구제법은 '입법 착오' - 강경근
	2006-01-23
언론피해구제법은 '입법 착오' 언론이 타인의 인격권이나 명예 등을 훼손하면 그 피해를 회복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온 제도가 금전 배상과 정정보도청구, 그리고 반론보도 청구이다. ‘정정보도’는 사실적 주장에 관한 언론보도가 진실하지 아니하므로 이를 고쳐달라는 것이지만, ‘반론보도’는 설혹 그것이 진실한 보도라 할지라도 이를 반박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제도로 분명히 그 성격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피해구제법)은 이를 구분하지 않고, 정정보도 청구의 경우에도 반론보도에서와 같이 “언론사의 고의·과실이나 위법성을 요하지 아니한다”거나 그 “정정보도청구에 대하여는 민사집행법의 가처분절차에 관한 규정에 의하여 재판”한다는 규정을 두었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법원은 그것이 언론의 기능을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해 헌법상 과잉금지 및 본질적 내용 침해 금지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하였다. 이와 같은 법원의 판단은 옳다. 이들 법 조항은 입법 착오이기 때문이다. 구(舊) 정간법(定刊法·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정정보도청구권을 두었는데 이미 오래 전에 헌법재판소는 그 실질은 반론보도 청구권이라 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정법은 정정보도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거기에 반론보도에 적용되는 내용들까지 그대로 답습하였다. 이는 정정보도 청구권이 전통적으로 민법상의 불법행위로 인한 권리구제의 한 유형이어서 언론의 고의·과실 및 위법성의 입증이 요구되어 왔었다는 종래 학설·판례의 본질과 내용에 반(反)하는 것이다. 심지어 민사집행법의 가처분절차에 관한 규정에 의하여 재판하도록 하는 것은 변론과 증거조사 등 실체적 권리관계의 판단에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적법절차의 원칙을 무시한 것이고, 언론사는 물론 피해자의 재판청구권을 무시한 위헌적 규정이다. 특히 이는 불법행위에 관한 법률상 본질적으로 요구되는 위법성 요건을 일반적으로 배제하여 위법하지 아니한 보도내용에도 정정의무를 부과하는 규정과 함께 헌법 제103조의 양심에 따른 재판을 받을 국민의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소송이 남용되어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는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며, 시간을 다투는 언론의 특성상 기사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부족한 현실에서 피해자의 소송제기에 따른 패소 위험부담이 있는 사건의 경우에는 아예 보도를 자제할 개연성을 크게 할 것이다. 이번 사안에서와 같이 청구인이 국가정보원과 같은 국가기관인 경우에는 자유로운 언론에 대한 제약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무리를 범한 것은 구 정간법상 반론권에 관한 규율을 현 언론피해구제법이 정정보도청구권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반론권과 정정권의 본질적 차이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언론피해구제법상 정정보도청구권의 법적 성격을 반론권도 아니고 민법 제764조에 의한 권리도 아닌 특별히 동법에 의해 창설된 권리로 보는 견해라든지 또는 이를 피해자의 이름으로 작성하여 청구하는 정정보도로 보아 반론권 제도의 하나로서 포섭하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정보도청구에 있어서의 언론사의 고의, 과실이나 위법함을 요하지 아니한다고 보게 할 정당성을 줄 근거는 적다. 그것은 반론권과 정정권 제도의 본질에 반하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는 언론피해자의 인격권을 보호한다는 목적을 지녔지만, 그것이 과잉으로 보호됨으로써 언론피해 구제의 법리에도 맞지 아니할 뿐더러 결국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결과를 가져온 이 규정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이전이라도 폐지하여야 할 것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6. 1. 2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