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개각과 '조폭의 의리' - 김일영
	2006-01-04
1·2 개각과 '조폭의 의리' ‘조폭신문’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방송(KBS)의 정연주 사장이 한겨레신문 기자 시절 보수 언론들이 반(反)노무현적 행태를 보이는 것을 가리켜 사용한 단어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의 이번 개각을 지켜보면서 ‘조폭신문’이 있다면 ‘조폭정권’이라는 말도 성립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정권 아래서 장관 직책이, 정치인들이 경력관리를 위해 스쳐 지나가는 자리 정도로 전락한 지는 오래다. 노 대통령은 권력의 언저리를 맴돌다가 어느 날 갑자기 중심으로 입성했기에 인재 풀(pool)이 한정돼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널리 인재를 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런 정공법보다는 자신의 제한된 인재 풀 안에서 사람들을 순환 보직시키는 편법을 택했다.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청와대나 행정부에서 경력을 키워 선거에 내보내고, 거기서 성공하면 열린우리당에 가서 활동케 하고 실패하면 다시 청와대나 행정부 또는 공기업으로 불러들여 경력을 보완시켜 다음 선거에 재출마시키는 것이 그 동안 노 대통령이 보여준 인사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인사가 되풀이됐고, 그 와중에 국정의 실질적 책임을 져야 할 장관 자리는 함량 미달의 정치인들을 위한 경력관리용 직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난 2일 단행된 개각도 크게 보면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동안 대선주자가 되기 위한 훈련 내지는 경력관리의 과정으로 장관 자리에 있던 정동영, 김근태 씨는 이제 열린우리당으로 복귀했다. 대신 열린우리당과 청와대에 있던 몇몇 사람을 보은(報恩) 내지는 경력관리의 차원에서 장관 자리에 앉혔거나 앉히려고 한 것이 이번 인사의 특징이다. 문제는 노 대통령의 이런 돌려막기 식 인사에서 조폭문화 특유의 상하관계(그들의 표현으로는 ‘오야붕-꼬붕’ 관계)가 감지된다는 점이다. 조직의 보스를 보호하기 위해 부하가 대신 감옥에 가고 그 대가로 보스가 부하의 뒤를 평생 돌봐주는 것은 우리가 영화에서 자주 본 조폭문화이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노동부장관에 내정된 이상수 씨는 전형적으로 이런 케이스에 해당되는 것 같다. 그가 불법 대선자금 문제로 형을 살고 나오자 노 대통령은 사면과 재·보선 출마를 통해 그의 뒤를 돌봐주었고, 선거 결과가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각료 자리를 주면서까지 보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산업자원부 장관에 내정된 정세균 의원의 경우도 유사하다. 주지하듯이 그는 지난 연말 사학법의 날치기 통과를 밀어붙여 정국을 파행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현재의 얼어붙은 정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런 사람을 이렇게 서둘러 각료로 내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를 장관에 내정한 것은 노 대통령이 현 정국을 풀 생각이 별로 없고 오히려 밀어붙이기를 잘한 것에 대해 보상을 해준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보건복지부 장관에 내정될지 여부가 아직 불투명하기는 하지만 유시민 의원의 경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노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부터 탄핵을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노무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충성심을 보여 왔다. 그를 각료로 쓰고 싶어하는 노 대통령의 마음은 이러한 충성심에 대한 보은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어야 마지막 남은 2년이 편안할 것 같은 게 노 대통령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만약 정연주 씨가 아직도 기자라면 노무현 정권의 이런 행태를 뭐라고 기술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만약 자신의 소신대로라면 ‘조폭신문’에 버금가는 ‘조폭정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6. 1. 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