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CEO에 비친 한국 기업·기업인 - 조동근
	2005-11-21
외국 CEO에 비친 한국 기업·기업인 인간은 마음의 창을 통해 현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똑같은 사물도 보는 이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반 잔의 물이 그 예이다. 어떤 사람은 반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어떤 사람은 반이나 남아 있는 것으로 본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 기업과 기업인은 내국인이 보는 그것과 사뭇 다르다. 2004년 1월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세계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40위에, 이 회사의 윤종용 부회장은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22위에 올랐다. 윤 부회장 이외에 유한양행 차중근 사장 역시 43위를 차지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50위’에 2인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2005년 11월 조사는 더욱 고무적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은 올해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42위로 데뷔했다. 이건희 회장은 47위로 랭크됐다. 기업의 경우, 삼성은 ‘가장 존경받는 기업순위’에서 32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최고 변화기업’분야에서 9위, ‘최고 혁신기업’ 분야에서 10위로 약진했다. 또한, FT는 21세기 글로벌 기업은 창조성·혁신성·리더십을 중시하며, 최고경영자의 ‘방어적 어젠다에서 모험적 어젠다로의 전환’이 뚜렷해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국내적으로 우리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반(反)정서의 뿌리는 깊다. 정·경 유착과 일부 비윤리적인 기업경영의 폐해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수 오너의 전횡이 기업의 사회적 이미지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반 국민이 겪은 경제적 고통도 반기업정서 형성에 일조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같은 요인으로 형성된 부정적 인식은 기업의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대만의 경우를 보자. 대만은 우리보다 2년 빨리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했고 우리가 겪은 IMF 위기도 피해갔다. 그럼에도 10년이 넘도록 1만달러 소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정책으로는 구조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대만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우리가 경멸하는 재벌 조직이다. 하지만 재벌 총수의 전횡을 눈감아주고 문어발식 확장과 선단(船團)경영을 허용한다고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대기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력은 특정 기업을 망하게 할 수는 있어도 흥하게 할 수는 없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의 재벌 기업조직과 경영은 일정부문 ‘경로 의존성’을 가졌으며, 시장 환경이 변하고 시장 규율이 작동됨에 따라 점차 진화해 가고 있다. 재벌 총수가 적은 지분을 갖고 경영 전권을 행사한다는 비판도 재고해야 한다. 주주는 이질적 투자자의 집합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즉 전문 경영인이나 주주대표에게 경영을 위임해야 한다. 따라서 관건은 지배주주의 ‘사적이익’ 추구 여부이다. 경영을 ‘일상적 관리’ 그 이상의 것이라 한다면, 주인 의식이 투철한 소유 경영이 FT가 언급한 모험적 어젠다 설정에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오늘날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의 성공 요인을 냉철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기업은 투자자와 소비자에게 건실하고 책임지는 경영으로, 수익을 내는 계속기업이 돼야 한다. 그리고 미래를 선취하기 위한 모험경영만이 혁신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APEC CEO서밋이 채택한 ‘반부패선언’ 그대로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을 마땅히 기울여야 한다. FT는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에 우호적인 언론이 아니다. 따라서 자학적 기업관을 지양해야 한다. 반기업 정서가 만연한 풍토에서 기업이 어떻게 투자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충할 수 있겠는가.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 시민회의 경제제도연구소장) 출처 - 문화일보 2005. 11. 2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