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자본 경계론… "투기성 자본은 막아야" - 윤창현
	2005-11-02
외국자본 경계론… "투기성 자본은 막아야" 2003년 초 이름조차 생소했던 유럽계 펀드 소버린은 (주)SK 주식을 단기간에 1900여 만주를 매입, 지분을 14.99%나 취득하였다. 이른바 ‘5% 공시’ 규정에 따라 소버린이 지분 취득의 목적을 공시한 내용은 네 글자였다. ‘수익 창출’. 허술한 공시 제도를 이용해 지분을 대량취득한 후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한 이 사건 이후 우리 금융당국은 5% 규정을 강화해 보다 분명하게 목적과 주체에 대한 정보를 공시토록 했다. 그러자 영국의 유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가 나섰다. 한국의 태도가 ‘정신분열적’이라는 것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 해외자본은 썰물처럼 우리나라를 빠져나갔다. 바로 이들 자본이 위기가 올 것 같다는 예상을 하고 먼저 움직였기 때문에 위기가 실제로 왔다는 이론이 소위 ‘날벼락론’이다. 외국자본은 혹시나 빠져나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지켜봐야 하는 자본이다. 해외자본의 광기어린 투기성과 발빠른 움직임이 국제금융시장에 위기를 가져온다는 것은 이미 널리 인정되고 있다. 물론 외국자본에도 종류가 있다. 외국인직접투자(FDI)를 통해 국내에 들어와 공장을 짓고 국내인력을 고용하고 제품을 만드는 자본은 정말 고마운 자본이다. 이들 외투(外投) 기업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건실한 모습을 보이면서 국내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자본 중에는 단기투기성 자본도 꽤 된다. 이러한 자본은 오히려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불안을 증대시킨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부분은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 부분이다. 미국의 경우 종합무역법에 엑슨-플로리오 조항을 신설해 국가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 투자에 대해 투자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미국 기업이 피땀 흘려 개발한 기술을 해외에 빼앗기지 않게 국가 안보 차원에서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영국·프랑스 등의 선진국에도 국가기간산업의 M&A에 대한 제재 제도가 존재한다. 그뿐인가. 유럽 국가들은 이사진의 국적 제한, 차등의결권, 황금주, 은행의 주식 보유, 복수이사회, 자유로운 증권 발행 등의 제도를 통해 외국 자본에 대한 각종 방어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상태는 한심하다. 만일에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경영권 방어장치를 곳곳에 심어두어도 시원찮을 판에 그나마 존재하는 지분도 각종 의결권 제한 조치들을 통해 묶어두고 있는 것이다. 이제 외환 위기 이후 공적자금을 투입해 정상화시킨 많은 기업들이 매물로 나온다. 이 참에 투자 여력이 있는 대기업의 타회사 지분 투자를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빨리 폐지하는 대신, 가공(架空)자본 형성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나 제도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아가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외국인 M&A 방지책을 엑슨-플로리오 조항에 준하여 도입하는 방안과 아울러 최근 일본에서 도입되고 있는 적대적 M&A 방지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는 방안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또한 각종 펀드 및 사모(私募) 펀드 등의 활성화를 통해 산업자본이니 금융자본이니 하는 낡은 기준을 초월한 새로운 ‘범한류(汎韓流) 자본’의 육성을 획기적으로 촉진하는 제도들도 도입해야 한다. 외환 위기 이후 국내자본을 홀대하며 외국인만을 우대하는 정책이 시행되는 바람에 상당 부분 외국 자본에 넘어가버린 은행 산업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제 다시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대비책을 마련할 때다. 尹暢賢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시민회의 사무총장) 출처 - 조선일보 2005. 11. 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