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대·소연정 바로읽기 - 박성조
	2005-10-13
독일의 대·소연정 바로읽기 요즈음 한국에서 연정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독일의 경우를 ‘시금석’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래서 독일에서의 연정과 관련, 몇 가지 오해를 풀어주고 싶다. 사회 일각에서는 다수와 정치의 효율성 간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다수’는 과반수를 살짝 넘는 ‘적은 다수’(소연정)가 아니고 ‘많은 다수(대연정)’를 말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연방) 정치는 소연정(적은 다수) 민주주의의 연속이며, 국민들은 이것을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대연정시대는 단 한번 1966~1969년의 키징거-브란트의 대연정 때이다. 지금부터 다시 한번 대연정이 시작될 전망이다. 그런데 대연정 형성의 동기는 표면적으로 ‘새로운 정치를 추진’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연방 주(州)의 이익을 대변하는 상원을 야당 다수가 지배할 때, 하원 다수에 의해 결의된 중요 안건을 상원에서 뒤엎거나 유예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됐다. 즉, 연방 주의 이익은 뒷전으로 가고 정당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 현실이다. 바로 이것이 독일 정치의 현주소이다. 최근까지도 야당이 상원을 정당정치의 도구로 활용하여 슈뢰더의 개혁 추진에 심각한 걸림돌이 됐었다. 야당이 장악한 상원의 대 정부 견제 기능을 봉쇄하는 방법은 현 시점에서는 단 한가지, 대연정이다 그러나 독일에서의 대연정은 코끼리에 비유되면서 ‘거구는 천천히 움직인다’는 것을 말한다. 대연정은 소연정과 완전히 다르다. 소연정은 우파와 중도정당, 또는 좌파와 중도정당으로 구성되며 ‘적은 다수’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실적을 통한 결속’을 다짐한다. 실적은 소연정의 부서간 경쟁에서 나온다. 독일 전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성공은 바로 소연정의 정책 시행을 위한 결속력이자 부서간의 경쟁이다. 이를 위해 능력 있는 ‘전문가’들이 부서를 맡았다. 소연정의 지도자들인 아데나워, 에르하르트, 브란트, 슈미트, 콜은 알려져 있지만 대연정의 지도자 키징거는 아무런 비전 없는 ‘꼭두각시’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에서 대연정은 좌파와 우파 정당 간의 연정이다. 뿌리나 전통·이념·사회네트워크가 기본적으로 다르다. 두 정당을 결속시키는 것은 이념이나 정책이 아니다. 정권(권력) 참여가 우선이다. 사실상 좌우파 간의 정책 면에서 수렴점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연정을 추진하는 것은 결혼하면서 이미 이혼을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막스 베버는 바이마르 민주주의 연정의 ‘실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서 ‘연정은 자리를 나누어 가지면서 평온한 정상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다’라고 연정을 통탄했다. 대연정은 개혁 추진의 전제가 안정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안정성을 정치의 효율성과 혼동하고 있다. 전자는 후자에 하나의 전제는 될 수 있으나 후자를 대체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의 효율성을 몽테스키외가 말한 것처럼 ‘날마다 있는 국민투표’로 생각하면, 대연정의 안정성은 정치 개혁에 필요한 국민의 소리(vox populi)와 대화는 의미가 없어진다. 다수의 절대화, 또는 극대화가 민주주의의 활기를 없애고 ‘독재화’를 부추기는 효과를 흔히 볼 수 있다. 독일에서 극좌파·학생운동·시민단체의 효시는 60년대 말 대연정과 직접 관련이 있었다. 즉, 대연정은 정치의 극단화, 시민단체의 확산, 국민의 정치 무관심화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연정에 관한 논의가 끝났다고 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연정 논의가 되풀이되고 있다. 독일의 경험은 한국의 연정 논의에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문화일보 2005. 10. 13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