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정부'가 국민사찰하다니 - 강경근
	2005-10-11
'국민의정부'가 국민사찰하다니… 대한민국호가 두서 없이 흘러간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뭐라 해도 그 이유의 첫째는 권력을 행하는 사람들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표권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 행위들을 스스럼없이 하거나 했다는 점에 있다. 최근 밝혀진 김대중(DJ) 정부의 도청도 그러하다. 도청이야말로 전형적으로 국민이 위임한 권력의 범위를 일탈한 행위다. 도청은 불법으로 감청하는 것이고 감청은 남의 말이나 대화를 엿듣는 일인데, 사인이 그런 짓을 하면 처벌받는 것으로 끝나지만, 국가권력이 그러면 통치 권력의 지배의 정당성이 부정된다. 국민으로부터 수권한 권력이 국민을 속이는 그런 일은 권력의 기초를 스스로 허물어 그 권력의 기반이 되는 국가 자체도 무너지게 하는 반역적 행위가 된다. 그래서 통신비밀보호법은 국가에 반역하는 범죄 행위인 이적·간첩 등의 대공 범죄나 테러, 국제조직범죄와 마약 등의 특정 범죄에 대해서만 법원 영장이나 대통령 승인을 전제로 하는 극히 한정된 경우에 합법적 감청만 인정하였다. 이는 법률 이상의 헌법적 명령이다. 그러니 함부로 사후의 특별법으로 이를 깰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역대 어느 정권보다 깨끗하다고 믿었고, 그 믿음 때문에 일련의 대북 정책의 순수성과 지난 대선의 승자인 참여정부의 정통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지 않게 하였던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4월∼2001년 11월 국가정보원 국내 담당 차장을 지낸 김은성씨가 긴급 체포된 후 검찰조사에서 “대통령이 풍부한 자료로 판단할 수 있게 하려고” 부하 직원들에게 도청 대상을 지정해 주고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R2)’ 및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CAS)’를 이용한 불법 도청을 지시했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02년 말 민주당 소장파의 ‘권노갑 최고위원 퇴진’과 관련한 휴대전화 통화 내용이나 진승현씨 불법대출 관련 통화 내용도 이 같은 방식으로 김씨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당시 국정원장이던 임동원씨와 신건씨 등 수뇌부가 과연 어떻게 보고를 받았는지, 또한 그 보고가 정권 핵심부에까지 전달됐다면 어느 선까지인지 명확히 가려야 할 일이다. 이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 시절 국가정보원의 휴대전화 감청 승인서에 서명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기에 명예 차원에서라도 그래야 한다. 연루된 국정원 직원들의 사법처리는 그것대로 진행되어야겠지만, 실추된 국가권력의 신뢰성과 국가의 정당성, 그리고 침해된 국민 사생활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국정원 도청 발표 직후 이를 부인하면서 ‘집단행동’까지 했던 전 원장들은 이제라도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 도청 자체가 사라졌다는 공동담화문을 낸 당시의 장관들도 마찬가지다. X파일의 본질은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도청행위이다. 아직 공소시효가 살아 있는 이 같은 인권 침해적 국가범죄에 대해 시효를 없애는 법까지 추진하겠다는 노무현 정권의 검찰이라면 지금껏 그랬듯이 당시 도청의 진상을 밝혀내고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법무부장관은 도청 테이프 내용을 수사하겠다 하기 전에, 성역 없는 수사로 불법 도청행위를 밝혀내도록 검찰을 독려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정치사찰 근절을 강조했으나 일상으로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 도청 가해자 정권이자 음습한 정보정치의 주역이 된 DJ 정권이니, 부분적이고 관행적인 수준을 넘은 정권 차원의 조직적인 범죄를 행하였느니 하는 오해들을 불식하고, 우리가 이런 정부에 국가권력을 5년간 맡겼다는 국민적 자괴감도 없애 줄 것이다. 그것만이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현 정부의 도청 유혹도 없앨 수 있다. 도청 금지는 이미 법의 문제가 아니라 통치권자의 의지에 달린 현실이 된 것이다. 강경근 (숭실대 법대 교수·헌법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5. 10. 1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