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삼성, 미로의 한국경제 - 윤창현
	2005-10-11
위기의 삼성, 미로의 한국경제 삼성식 지배구조 색안경벗고 보자 한국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대략 6800억달러로서 전 세계 국가 중 11위 수준이다. 6900억달러인 인도를 제치면 ‘글로벌 톱10’에 올라선다. 한반도의 반쪽밖에 차지하지 못한 이 조그만 나라가 10위권에 진입하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 데는 ‘수출주도형 불균형 성장 전략’이라는 국가발전 전략이 제대로 먹혀든 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출주도 전략은 열심히 물건을 생산해 나라 밖에다 팔아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이다. 국내 시장이 협소하니 소득이 훨씬 높은 해외 시장에다 팔자는 것이다. 매우 훌륭한 블루오션 전략인 셈이다. 섬유류나 봉제품을 열심히 만들어 팔고 심지어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리고 이 돈을 다시 투자해 기업을 키우면서, 또 새로운 기업을 설립하고 신규 산업에 진출했다. 불균형 성장 전략은 무언가? 대출 재원이 부족해 모든 기업 다 지원할 수는 없으니 잘될 것 같은 몇몇 기업만 국가가 선택해 화끈(?)하게 지원하자는 것이다. 재벌구조는 이렇게 탄생했다. A기업이 잘되면 또 다른 회사 B를 설립해 지분을 취득하고 또 잘되면 C기업을 설립한다. 하나 하나는 작지만 여러 개의 기업이 선단을 이뤄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기도 하고 수출을 늘리는 놀라운 성과가 여기서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지배주주이자 경영자인 총수는 의사결정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경영진과 함께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고 방향을 제시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가지는 단기 성과주의를 극복하고 대리인 비용을 최소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성장한 삼성의 기업 성과는 현재 놀라운 수준이다. 법인세와 소득세 등을 8조원가량 납부하면서 우리나라 전체 일반회계 세수의 7.1%를 차지하고 있고, 수출액을 530억달러나 올리면서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0.8%를 차지하고 있다. 그뿐인가?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지난 7월에 삼성전자의 신용등급을 두 등급이나 상향 조정했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A3로서 투자등급 10등급 중 7등급인데 삼성전자만을 따로 떼어서 5등급인 A1을 부여한 것이다. 어떤 기업에 대해 그 기업이 속한 국가신용등급보다 높은 등급을 부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것도 두 등급이나 높인 일은 거의 없다. 이제 삼성은 인텔 노키아 소니와 같은 신용등급을 부여받아서 대한민국보다도 더 높은 신용도를 자랑하게 됐다.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이 삼성의 지배 소유구조의 장단점을 다 알면서 이 같은 등급을 부여한 것은 ‘삼성만의 지배구조’라는 장점을 인정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문제를 바라보는 심경은 착잡하기만 하다. 성과가 매우 훌륭한 조직에 대해 문제점만을 주로 부각시키면서 때리기가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재벌체제에 대해 선단경영 황제경영 세습경영이라는 논리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그러나 선단경영은 소위 계열경영으로서 사업다각화와 신규 산업 진출에도 용이하고 동일한 브랜드를 여러 회사가 같이 사용하면서 신규 시장을 개척할 때 매우 효과적인 측면이 있다. 황제경영이나 세습경영도 뒤집어보면 전 세계 기업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가족 경영기업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소유 지배구조가 오히려 경영진의 잦은 교체를 막고 조직원들이 안정감을 가지고 조직을 위해 노력을 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한 조직의 장점과 단점 순기능과 역기능은 칼로 무 자르듯 분리해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역기능이 순기능과 미묘하게 결합이 돼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다리를 떠는 습관이 있다고 할 때 다리 떠는 습관을 고치려고 들다가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져서 성적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면 습관 고치기에 대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기업에 대한 애증이 교차하고 있는 국민정서에 대해 증오 쪽을 부추기는 듯한 움직임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은 곧 성과가 훌륭한 기업과 기업인들을 우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포함한다. 물론 삼성의 대응도 필요하다. 분위기가 차분해지고 나서 무언가 의미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특히 경영권 승계 문제가 원만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에버랜드 CB문제를 포함, 여러 가지 부분에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을 고치고 바꿀 것인지는 기업 스스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주주와 경영진의 몫이며 지금과 같이 사회각계에서 지나치게 압박을 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GDP 1조달러,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향해 매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2, 제3의 삼성이 필요하다. 지금의 분위기는 너무 격앙돼 있다. 좀더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할 때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 시민회의 사무총장) 출처 - 헤럴드경제 2005. 10. 1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