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만들기와 마녀사냥 - 김일영
	2005-09-15
영웅 만들기와 마녀사냥 상징조작은 정치의 가장 유용한 수단 중 하나다. 정치의 세계에서 각 세력은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을 재해석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에 이용하곤 한다. 그것은 때로는 덧칠을 통한 영웅 만들기로, 때로는 깎아내리기를 통한 마녀사냥으로 나타난다. 지난날 맥아더 동상 건립이 영웅 만들기라는 상징행위였다면, 근자의 동상철거 시도는 마녀사냥식의 상징행위다. 이런 식의 상징조작 행위는 역사상 자주 있었다. 박지향 교수가 편집한 '영웅 만들기'는 나폴레옹.잔 다르크.엘리자베스.무솔리니.비스마르크가 모두 근대 국민국가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국민적 영웅'임을 보여주고 있다. 권형진 교수가 편집한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에 따르면, 마오쩌둥(毛澤東)의 '좋은 전사' 레이펑, 김일성의 '영원한 천리마' 길확실, 소련의 '사회주의 노동영웅' 스타하노프 등은 모두 독재정권이 대중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만들어낸 영웅이다. 영웅 만들기 작업에서 한반도도 빠지지 않았다. 박정희 시대에 이순신은 충(忠)과 무(武), 그리고 구국의 상징으로 추앙되었으며, 이승복은 공산주의의 잔학성에 항거한 용감한 소년으로 반공의 상징이 되었다. 이 책들에서는 누락되었지만 영웅 만들기 작업의 대명사는 북한의 김일성 우상화다. 그는 스스로를 신격화했고, 그것은 대를 이어 계승되고 있다. 영웅 만들기 작업과 동전의 양면관계를 이루는 것이 마녀사냥이다. 이것은 중세 유럽에서 가톨릭이 이단(異端)의 침투를 막고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자주 사용하던 통치술이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도 마녀사냥은 그치지 않았다. 히틀러의 마녀사냥감은 유대인이었고, 미국에서도 한때 매카시즘의 이름으로 공산주의 마녀사냥이 유행했다. 마녀사냥은 한반도에서도 횡행했다. 한국에서는 김일성과 북한 공산주의를 먹잇감 삼아 마녀사냥을 즐겼고, 북한에서는 '미제(美帝)와 그 앞잡이'인 한국의 지배층을 대상으로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직도 반공시위나 반미시위에서 등장하는 김일성이나 미국 대통령 화형식, 인공기나 성조기 불태우기 등은 상징성 면에서 중세에 마녀를 불태워 죽이는 행위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영웅 만들기와 마녀사냥은 동서고금을 초월하여 위정자들이 즐겨 사용한 통치술이다. 하지만 현대로 올수록 그리고 정치가 민주화될수록 그 사용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매카시즘과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현대의 영웅 만들기나 마녀사냥은 대부분 대중독재 아래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가장 민주적인 정부라고 자부하는 노무현 정부하에서 유달리 마녀사냥이 자주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현 정부하에서 마녀사냥감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강남, 서울대, 사법부, 조.중.동, 삼성의 오적(五賊)과 친일파를 거쳐 현재는 총구가 맥아더 동상을 겨누고 있다. 단언컨대 이 자리에서 이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에게 공(功)이 있다면 상을 주어야 할 것이고, 과(過)가 있다면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개혁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들의 허물에 대한 책임추궁 자체에 대해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다만 그 방식이 지극히 선동적이고 여론몰이에 기초한 마녀사냥식이라는 점은 지적하고 싶다. 모멸감을 주지 않고, 전투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마녀사냥식으로 추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마녀사냥의 최종 목표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맥아더 동상의 경우를 보자. 맥아더는 영웅도 아니지만 이제 와서 새삼 마녀사냥의 대상이 될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맥아더를 새로운 먹잇감으로 골랐다. 그러나 맥아더 동상이 그들의 최종 사냥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반미 자주화를 위한 그들의 도정(道程)에서 제물의 하나로 선택된 먹잇감에 불과하다. 그들은 최종 목표가 달성되는 날까지 계속해서 타깃을 만들어낼 것이다. 영웅 만들기와 마녀사냥은 모두 이성의 마비와 집단적 광기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한국 정치는 이러한 주술(呪術)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한국의 앞날에 먹구름만 있을 뿐이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중앙일보 2005. 9. 1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