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개탄하면서 악용하는 정치 - 조동근
	2005-09-12
지역주의 개탄하면서 악용하는 정치 노무현 대통령은 8일 중미 순방길에 “당분간 연정 얘기를 안 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계기로 연정 논의는 당분간 수면 아래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과연 연정에 대한 미련까지도 접을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7일 박근혜 대표와의 회담 때 노 대통령이 “또 다른 대화정치 방안이 있는지 연구해 보겠다”고 한 데서 보듯이, 연정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추가적 승부수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에 대한 자신의 진정성을 누차에 걸쳐 강조했다. 지역주의가 혁파돼야 상생과 공존의 국민통합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정을 통해 권력을 공유함으로써 지역주의가 해소될 때 비로소 미래로의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정은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지역주의 타파가 필생의 과업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지역주의는 일종의 ‘지병(持病)’이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 참여정부의 집권 반환점을 즈음해 지병이 갑자기 악화됐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지역주의가 다민족·다언어·다종교 등에 의한 구조화된 ‘균열주의’인가 하는 점이다. 단연코 아니다. 따라서 지역주의를 고착화시키는 ‘구조적’ 장애는 없다. 결국 지역주의는 과장된 측면이 강하다. 또한 지역당에 안주하면 집권의 기회를 잃는다. 집권에 성공하려면 보편성을 추구하고 이념적 지평을 넓혀 국민적 지지를 얻어야 한다. 지역적 기반을 넓히지 않고서는 집권할 수 없기 때문에, 정당간의 경쟁이 지역주의를 엷게 할 것이다. 선거구제를 바꿔 국회의원을 교차 당선시키는 것을 지역주의 극복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지역주의를 개탄하면서 이를 악용한 정치 행태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연정이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적절한 대안일 수는 없다. 연정은 정책적 지향점이 크게 다르지 않아야 가능하다. 또한 연정은 책임정치를 실종케 할 뿐더러, 연정을 매개로 야당을 포섭하는 것은 정체성에 기반한 경쟁구조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는 정치 발전에 역행하는 처사이다. 정치행위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어야 한다. 노 대통령도 국민들의 어려운 살림 형편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경제가 늘 국정 제1순위”였다는 항변은 공허할 뿐이다. 현재 경제가 침체된 것은 여소야대와 지역주의 때문이 아니다. 초당적 연정이 이뤄지지 않아서도 아니다. 경제는 복잡해 보이지만 ‘심리’와 ‘흐름’의 문제로 귀결된다. 따라서 불확실성을 없애 경제심리를 안정시키고 경제 자원의 흐름이 순조롭도록 시장친화적 경제정책을 구사하면 경제는 활력을 얻게 된다. 올 초 잠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를 가진 적이 있다. 통계청이 새해 벽두에 발표한 ‘소비자 기대지수’ 개선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심리 회복은 ‘소비 여력’의 확충이 합리적으로 기대될 때 가능하다. 그러나 당시 소비자 기대지수 개선이 소비 여력 확충에 의해 뒷받침됐다는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소비심리를 개선시킨 것은 정책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다. 이념논쟁에서 벗어나 경제회복에 진력(盡力)하겠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경제 올인’ 다짐 자체가 경제심리를 안정시켰던 것이다. 이제 연정에 대한 미련을 접고 경제 살리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투자와 소비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시장원리를 존중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적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 기업 활력이 북돋워질 때 고용이 증진되고 양극화도 완화될 수 있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를 완화하고 과거를 캐는 정치자금 수사도 조기에 종결돼야 한다. 1980년 레이건의 선거 구호는 명료했다. 유권자들에게 “4년 전보다 살림 형편이 더 나아졌는가”라고 물은 것이다. 참여정부도 자문해 보기 바란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 시민회의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출처 - 문화일보 2005. 9. 1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