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과 시민단체의 이중잣대 - 홍진표
	2005-09-08
X파일과 시민단체의 이중잣대 한 월간지에 게재된 X파일 대화록 전문을 읽어 보았다. 80% 이상 내용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해서 모두 읽어내는 데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이들이 무슨 대단한 은어를 써서 그런 게 아니다. 공식적인 회의나 공개적인 토론이 아닌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나누는 우리의 대화가 통상 그렇다. 구어체 특유의 거두절미, 화제의 잦은 이동, 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이 이미 공유하고 있는 사실의 생략 등 제3자는 옆에 있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가 진행되기 마련이다. 여당과 민주노동당 그리고 일부 시민단체는 274개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법률적인 문제를 떠나서 당국이 이 테이프를 공개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의 작업이 필수적이다. 우선, 제3자에게는 암호문에 가까운 대화록에 친절한 주석을 달아주어야 한다. 이 주석은 대화록의 몇 배 분량이 될지도 모른다. 또, 범죄의 단서와 같은, 비교적 정보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치자금, 인사 개입, 야당 공작 등과 같은 내용은 그 진위나 실행 여부를 밝혀 주어야 한다. 사적인 대화에서는 소문을 진실인 것처럼 과장하거나, 자기 과시용 허풍을 떨거나, 심지어 의도적인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아가 언행이 일치되지 않고 말로만 그치는 사례도 수없이 많다. 말만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진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이른바 진보계열의 100여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X파일공대위’는 특정 기업을 공격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과 국민의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이들 단체의 무관심과 모순된 행동은 참으로 놀랍다. 이들 단체 가운데 다수는 지난 2003년 교육부가 추진하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해 ‘국민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며 공대위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갖춘 독재자)까지 거론하며 강력한 반대운동을 벌였다. 일관성 측면에서 본다면, 이들은 이번 X파일사태와 관련,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초강력 투쟁을 벌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뜻밖에도 특정 기업을 공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심지어 나머지 테이프도 공개하자고 주장함으로써 사실상 불법 도청에 대한 관용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한두 개 단체도 아닌 노동·환경·언론·여성·법조·학계 등 광범한 분야의 100여 단체가 어떻게 한꺼번에 일관성의 일탈을 보일 수 있는지 이 대목도 미스터리이다. 이들 단체 지도부의 다수가 반(反)시장주의를 내세운 좌파운동에 종사했었다는 ‘과거사’의 공통점은 공동 행동의 한 단서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가 실현되고 사회주의 체제의 실험이 실패로 증명된 시대 변화에 맞게 새로운 시민운동을 개화시킨 사람들이 과연 아직도 구시대적 사고의 잔재를 붙들고 있는 것일까? 믿기 어려운 일이나 이들의 예상외의 일탈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이번 X파일 사태를 놓고 정치권은 자신들의 유·불리를 따지며 계산된 처신을 하고 있다. 심지어 무슨 음모론까지 들먹이면서 자신들의 책임은 면제받고, 상대는 곤란에 빠지게 만들려는 이기주의가 횡행한다. 사실 이번 X파일 사태는 여러 가지 우연과 개인의 탐욕, 언론사들의 경쟁심리 등이 작용되어 돌출된, 누구의 기획도 불가능한 복합적 요인들이 얽힌 사건이다. 이런 와중에 시민단체들까지 우리 사회의 편가르기 풍조에 편승하여 편파적 처신을 한다면 국민의 실망이 클 것이다. 적어도 시민단체들만이라도 불법 도청이라는 사회악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 시민회의 정책실장) 출처 - 문화일보 2005. 9. 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