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시대' 앞둔 국립중앙박물관 - 김종규
	2005-08-22
'용산시대' 앞둔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용산은 한국 근대사에서 적어도 100년 동안 시민과는 멀고 먼 공간이었다. 외국인은 들어갈 수 있으나 우리들은 근접이 불가능했던 질곡의 역사를 안고 있다. 점령의 역사는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용산 일대에 군사와 철도기지를 세워 한반도의 통치와 대륙 침략의 거점으로 삼은 데서 찾을 수 있다(일본군 주둔이 임진왜란 때도 있었다고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보다 분명한 근거를 찾아 언급해야 할 사안이어서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용산은 교통의 요지, 한양의 관문, 한강 수로 이용, 서울과 가장 인접한 항구인 인천과 철길 연결의 최적지임이 대륙 점령의 꿈에 사로잡혀 있던 일제의 맘에 끌렸을 것이다. 그리고 일제의 그러한 망상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8·15광복 이후 이곳은 주한미군 지휘부가 되었다. 이렇듯 지금까지도 ‘남의 땅’으로 남은 채 우리 역사의 질곡을 대변하고 있으며 개발의 뒷전에 물러나 있었던 지역이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이곳에 ‘광복 60년’을 맞이한 올해,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감회가 새롭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지난 7월 20일 중앙박물관 개관 100일을 앞두고 가진 미군기지 담장을 허무는 행사는 이러한 측면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리들의 의식의 공간에서 사라진 땅. 그 공간에 둘러쳐진 긴 장막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한 세기동안에 걸쳐 시민의 발걸음을 막아온 장벽의 실체는 높이 2.5m, 길이 350m에 불과했다. 넓고 화려한 세상과 소통하는 창을 가리고 있는 커튼과 같은 그런 존재로 우리의 의식 앞을 가로막아온 장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용산에 자리잡게 되었을까. 국립중앙박물관은 8·15해방과 그 역사를 같이하고 있다. 1945년 경복궁에서 개관했지만 그 후 중앙박물관은 전시기획과 유물의 디스플레이보다 포장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만큼 자주 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6·25와 정권차원의 정치적 고려 때문에 일곱 번 이사를 해야 했다. 그것도 만 60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벌어졌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의 입장에서 보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며, 어떠한 이유로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김재원 초대 관장을 비롯한 박물관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록 국가 소장 유물은 이렇게나마 관리되어 왔지만 국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많은 문화유산은 어떠했겠는가. 중앙박물관이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동안 도굴과 약탈을 통해 일본으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유출되어 그 치욕의 경로도 모른 채 이름 모를 박물관의 한 공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질곡의 역사, 파란의 근대사 속에서 함께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제 60년 만에 안식처를 찾아가고 있다. 오는 10월 28일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장대하게 문을 여는 그랜드 오픈(Grand open)의 날이다. 프랑스의 자존심인 루브르박물관에 버금가는 박물관으로,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대변하는 1만2000여점의 유물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리히터 규모 6.0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와 수많은 첨단 장치들은 수장고 등 부대시설과 더불어 세계 6대 박물관으로 손색없음이 이미 객관적인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자존심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일인 오는 10월 28일은 나라의 역사와 박물관의 역사가 새로이 만나는 ‘문화의 날’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렇듯 거듭나고 있다. 한국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재조명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시민 곁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 이것이 국립중앙박물관 용산시대의 진정한 의의다.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문화일보 2005. 8. 2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