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넘어야 할 산' - 정진영
	2005-08-16
남.북이 '넘어야 할 산' 현충원참배 의구심 거두자 교류 잦으면 북이 더 위험 광복 60주년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내려온 북측 대표단이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일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사건의 정치적 의미를 생각할 때 이에 대한 논란은 당연하다. 현충원에는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전직 국가원수와 6·25 전쟁의 희생자들도 묻혀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장소인 것이다. 이러한 현충원을 북측 대표단이 참배한 것은, 북한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6·25 전쟁에 대해 사죄한 것인가. 아마 이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북측의 김기남 단장이 ‘조국 광복을 위해 생을 바친 분이 있어 방문하겠다’고 참배의 취지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의 방문은 항일 독립투사들에 대한 참배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북측의 현충원 참배는 한국 정부가 좌익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인정한 것과 같은 정도의 의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충원에는 항일투사들 외에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많은 인사들이 안장돼 있다는 사실을 북측이 몰랐을 리가 없다. 북측 방문단의 림동옥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은 남북이 화해·협력으로 나아가기 위해 ‘언젠가 넘어야 할 산’이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매우 어려웠지만 참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즉 현충원의 상징을 알면서도 남북 화해를 위해 참배했다는 의미이다. 우리 정부당국의 평가도 북한의 이러한 입장과 맥을 같이한다. 통일부는 북측의 현충원 참배는 “남북 간 불행했던 과거와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를 실현해 나가는 긴 여정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하면서, “남북 관계의 진전과 북측의 남북 공존·공영에 대한 의지를 실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남북한 간의 화해·협력이 경제협력을 넘어 정치협력의 수준으로 진전될 것이라는 희망 어린 평가이다. 사실 이러한 희망은 우리 국민 모두가 갖고 있다. 다만,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 상의 차이가 종종 ‘남남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북측 대표단의 현충원 참배를 남북한 공존·공영에 대한 북한당국의 의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하는 데 주저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의도를 신뢰하지 못하고 이 일이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 이들은 북한의 대남 유화 제스처가 통일전선전술의 일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한 내 친북세력 증가에 고무된 북한당국이 현충원 참배를 통하여 한국민들의 북한당국에 대한 적대의식을 누그러뜨리고 친북세력의 활동공간을 넓혀주기 위한 계략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의구심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첫째, 북한이 적화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고, 남한 내 진보세력이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나 인권 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당국이나 이 문제들을 거론하지 않는 진보세력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당국과 진보세력이 내세우는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과 미군 철수 주장 때문이다. 미군 철수와 연방제 통일이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혼란 속에 빠뜨리지 않을까 우려한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북한당국과의 공조를 통하여 보수세력을 제압하려고 한다면, 과거 군사정부가 대북 위기의식을 조장하여 정권을 유지했던 것과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진보세력은 과거 한국의 독재와 인권 탄압 종식을 위해 싸웠듯이 북한 민주화를 위해서 노력할 때, 그들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논리는 과거 독재 시절 자신들을 억압하던 세력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남북한 간의 교류와 왕래가 우리보다 북한을 더욱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활력으로 인하여 북한당국의 통일전선전술이 우리보다 오히려 자신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점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5. 8. 1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