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인간”의 복권과 공공권 - 신일철
	2002-08-10
“정치적 인간”의 복권과 공공권 1. 정치(政治)의 paradigm 전환 Paradigm 개념은 Kuhn의 과학사의 철학에서 유래했다. 길게는 200년 지배한 뉴턴 패러다임도 있고 수 10년 신봉해온 “연소소”(phlogiston)개념은 곧 없어졌다. 패러다임은 한 시기 과학연구를 지배한 기본적 이론․개념틀이고 거기에는 형이상학적 세계관도 포함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다는 소박 실재론이 무너지고 그 대신 “theory-laden”, 관찰 사실에 앞서서 그것을 보는 이론이란 색안경의 기본틀이 무엇이냐에 의해 관찰대상에 대한 서로 다른 두가지 이론이 대립될 수 있다. 그 대표적 예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의 대립=패러다임 전환인데 길게는 100년 간에 걸쳐 새 패러다임이 정착되었다. 비근한 예로 개구리의 눈에는 움직이는 것 = 살아있는 것으로 따라서 먹이가 된다. 개구리 눈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있다고 볼 수 있는 “패러다임”이 없다. 패러다임이 다르면 없다고들 하는 것도 있게 보이고 있는 것도 안보여 없는 것이 된다. 뉴턴의 “萬有引力”은 그 이전에는 존재가 인정되지 않았다. 성미 나쁜 서울의 의사 A와 대구의 친절한 의사 B가 동일한 감기환자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똑같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A와 B가 의과대학에서 배운 교과서가 같기 때문이다. 한국의 양의 들은 같은 의학 패러다임 속에서 일하고 있다. 그 패러다임의 근본틀까지 의심하고 비판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Kuhn은 패러다임 전환은 종교적 개종과 같아서 쉽사리 바꾸기 힘든 것이라 했다. Kuhn은 두 연구자가 같은 방에 있어도 그 패러다임이 다르다면 이 두사람은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것과 같다고 역설했다. 이를 이론 또는 패러다임간의 不可公約性이라 한다. 비근한 예를 또 한가지 들어보자. 2001년 신년에 북한 김정일 총비서가 “소위 신사고”를 내걸고 “상하이 쇼크”를 받고 돌아가 북한체제를 “제2의 중국”형으로 확 바꾼다고 유독 한국 일각에서만 희망적 관찰을 했다. 그러나 북한 지도자는 그의 통치 패러다임을 바꾸기 힘들다. 그의 통치술은 적이 있어야 “선군”주의 독재가 정당화되는 계급 투쟁설이었고 평생 시장체험이 없어 “시장적 사고”가 없다. 그에게 시장은 곧 암거래 장마당의 사회악으로만 보일 뿐이다. 자유시장은 불확정성이 특징이며 수요 공급의 차질이 생기면 가격폭등의 신호로 나타난다. 이런 가격의 변동을 긍정적으로 보는 눈이 없으면 강권 발동으로 중앙지령주의 통제가격으로 고정시켜 장마당시장을 질식시키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내일의 주식시장 등락을 족집게 무당처럼 예측하는 무당, 점쟁이가 나온다면 그것은 시장파괴이다. 예측 불가능성이 있는 것이 정상이고 이에 대비하는 리스크관리, 위기 회피적 의사결정이 바로 시장적 사고를 가진 진정한 합리성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정치의 패라다임은 전체론적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의 “허위의식”에 의한 선전선동적 강제동원이 아니라 민주적 “시민정치”(civil politics)라 할 수 있다. 정치에 있어서도 나무(tree)적인 것이 아니라 리좀(rizome)적이고 따라서 “유목적”인 노마드(Nomad)상의 질서를 지향하는 점에서 다원적 질서이다. 정치이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노마드적인 카오스의 질서를 내세우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치열한 문제는 인간이 모든 근거를 상실하고 따라서 개인이 뿌리내리고 집고서야할 땅을 박탈해 버린데 있다. 그점에서 안이한 권력복종은 아니지만 그대신 가혹한 삶을 받아들이고 좋은 의미에서 열려진 다원성의 공공권 추구라 할 수 있겠다. 20세기의 두 대표가 Hannah Arendt와 Rorty이다. 여기에 Habermas를 첨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공공적공간”에서의 “강제없는 합의”의 시민정치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정치철학에서 일어난 정치의 패라다임 전환의 조짐은 좌우익의 편가르기 이데올로기 정치에서 민주적 시민정치에의 전환이다. 그 근저에는 정치가 이데올로기와 “노동”의 도구적 행위 영역이 아니라 언어의 영역이며 “相互行爲”, 왜곡되지 아니한 커뮤니케이션 행위에서 “강제없는 합의”가 얻어지는 “공공성”(Offentlichkert)의 영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하버마스는 인간의 기본적 생활 연관에서 먼저 노동은 인간이 자연에 작용하는 도구적행위라고 하고 또 하나의 영역은 언어의 영역인데 이것이 “공공권”(public sphere)으로서 해석학적 차원이라고 했다. 맑스주의는 노동 : 도구적행위안에 인간의 언어=공공권을 해소시킴으로써 시민들의 의사소통을 무시한 실증주의에 빠졌는데 그 때문에 레닌주의에서는 정치가 사상의 의식화 등 인위적 조작 가능성의 체계가 되었다고 하겠다. 구사회주의권에서는 공공권에서의 토론․비판이 질식되고 자유언론이 설 자리가 없음으로써 정치가 없었던 것이다. 맑스주의 국가소멸론은 “노동”에 나타난 도구적 정치관에 따라서 정치의 죽음을 전제한 것이 된다. 20세기에 “사회적 인간”의 대두로 “정치적 인간”이 쇠퇴한 가운데 정치를 복권시키려고 한 것이 Hannah Arendt의 학적 사상적 공헌이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Human Condition, 1958)은 정치보다 행정, 지도보다 관리, 권위보다 조작, 전통보다 기술, 설득보다 완력을 우위에 두려는 전체주의 적권력추구 경향의 수렁에서 정치와 공공적공간을 재생시키려고 했다. 아렌트는 인간행동을 다음 세가지 범주로 부분했다. ① 노동(labor). 육체의 대사작용과 같이 소비되는 것, 소모되는 육체노동과 그것이 기계에 의해 대치되는 운명에 있다. 노동해서 먹고 없어지는 허망성. 소비재성. ② 일(work). 이는 노동보다 고차적인데 직인의 공작, 기예이며 노동과 다른 점은 그 생산물의 영속성, 인구성이다. 산업혁명후 노동과 일의 구분은 예술작품 등 작은 예외를 남겨놓고 희미해졌다. 이는 노동이 가진 "무세계성"과 공허성의 문제의식 자체마저 망각되게 했다. 맑스주의와 브루죠아 사상가들이 노동만을 존중하고 먹는 문제, 사회문제의 해결이 인간생활의 전부이듯이 착각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영원”과 “불멸”의 관념을 지닌 대 기념비를 남기려는 정치․예술의 “활동”(action)의 인간행동이 망각되었다. 고대 그리스이래의 폴리스적 시민정치에서는 폭력보다 설득으로 차이와 자유가 살아있는 언론의 영역에서 정치가 있었다. 그러나 “정치”가 쇠퇴함으로서 자난시기 전쟁과 혁명,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대립 등으로 폭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폭력보다는 설득, 공공권과 “활동”의 회복에서 자유와 차이가 다시 사는 민주적 시민정치의 “정치”의 복권이 요청된다. 2. 정치적 판단력과 “정신생활” 20세기의 탁월한 정치철학자 Hannah Arendt는 유태인을 대량학살한 아이히만의 법정을 방청하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써서 대논쟁을 일으켰다. 유태인들의 열광적 시오니즘의 신념에서는 아이히만은 호로코스트의 악한이었다. 그러나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에 대한 인상은 다만 “악의 진부성”에 불과했다. 그녀는 아이히만을 천생 잔혹성의 악한, 유태인에 대한 인종차별 감정으로 뭉친 괴물적 악의 화신으로 묘사하지 않고 다만 나치스 실정법이나 최고권력자의 명령에 충실했던 순종적인 소시민, 범상한 하급관리로 보았다. 아이히만은 인간성에 대한 죄인 가증스러운 잔혹행위를 저지르면서도 그런 권력의 복종에서 아무런 의문도 가질 수 없는 인간, 그의 “양심”의 결여, 사고능력의 결여, 자율적 판단력의 부재를 새삼 확인했다. 유태인 대학살에 대한 재판에 대해서도 알렌트는 피해자 유태인만의 재판으로 해서 그 죄상의 본질인 “인류에 대한 죄”로서 그 범죄행위를 부각시키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 평론에 대해 각국 유태인 조직이 격렬하게 항의했고 아렌트에게는 “유태인에 대한 사랑”이 없다고 호되게 질타당했다. 아이히만의 너무 지독한 “무사상상”을 보고 그 개인보다 그런 사상도 정신도 박탈당한 넉없는 인간을 만들어 낸 전체주의 정치의 근원에 주목한 것이다. 나치즘이나 볼세비즘이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를 내걸고 자동 인형과 같은 중앙권력에 맹종하게 길들어져서 정신적 자아상실의 전형인 많은 무사상, 무정신의 하수인이 양산되는데 그 대표가 아이히만이라 할 것이다. 아렌트가 정치의 재발견을 위해 “정신생활”의 문제를 제기하고 정치적 활동은 단순한 권력추구가 아니라 고도의 정신적 삶의 방식으로서 재긍정해야 한다고 해서 정치의 패라다임을 바꾸었다고 하겠다. 아렌트가 새로운 “정치적인 것”의 주소를 재발견한 것은 인간성회복의 원점인 “公共的 空間”에서 다시 사는 정치적 자유의 영역을 회복하고자 한 의도에서였다. 그녀는 정치를 다시 고대그리스의 “폴리스”(Polis)적 공공성의 공간에서 그 원형을 찾는다. 아렌트의 정치철학은 스승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적 존재론에 바탕을 두고 있어 현상학적 방법에서 정치적 사고와 정치적인 것을 재발견했다. 아렌트는 우선 형이상학 비판에서 하이데가로부터 막중한 영향을 받아 “드러남”(appearence)의 세계이외의 실재를 인정치 않고 “존재”(to on)와 “드러남”(dokei)의 2분법의 벽을 넘는다. 이런 “드러남”은 언제나 타자(他者)의 눈에 보이는 것이고 관객이나 지평에 따라 변하는 “드러남”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렌트가 정치적 활동의 “활동”(action)은 노동(labor)과 일(work)과 구별해서 타자라는 관객을 앞에하고 배우가 연기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실로 그리스의 폴리스는 활동을 가능케 해주는 들어남의 공간, 자유가 들어날 수 있는 일종의 극장을 사람들에게 제공해준 <통치형태>이다.”(The Life of Mind) 여기서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단독자(單獨者)적 실존과의 차이를 드러낸다. 하이데거에서는 “누구인가”(who)와 “무엇인가”(what)의 구별이 Das Selbst와 Das Man의 구별이 된다. 확실히 자기자각적 실존인 Das Selbst는 의미를 상실하고 실재성을 못가진 시대에 사는 "일상인" Das Man이 마침내 자기의 참자아를 깨우친 자기자각의 존재방식이다. 사물에 대해서 “그것이 무엇인가”라고 부를 수 있으나 인간이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 없고 다만 그가 “누구인가”라고 물을 수 있는 말이다. 이점에서 Das Selbst가 타자와의 관계를 단절한 독아론적인 실존인데 대해 아렌트는 이의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절대적 고독속에서 파악되는 홀로의 ｢자기｣는 무의미하고 고립되지 않고 또한 다만 “공공적개인”의 일상생활에 매몰되어 있어도 역시 이는 진정한 “자기”는 아니다. 이처럼 하이데거가 독아론(獨我論)적 물음에 머무름으로써 실존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정치적으로도 결단주의=비상시의 극한상황에서의 권력자 개인의 단독적 “결의”(Entschless)에 귀착되었다. 칼 슈미트(Carl Schmitt)가 바이말공화정의 해체과정에서 민주주의적 의회제도와 다원주의 정치론등 자유주의 정치철학을 비판하고 오직 탁월한 엘리트의 결단에서 정치의 본질을 찾는 전체주의 정치론을 내놓아 나치스독재의 이론적 합리화에 기여했다. 이와달리 아렌트는 “들어남”이 타자의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고 “누구인가”도 역시 타자와의 관계에서 그 해답이 얻어진다. 따라서 아렌트의 인간조건의 기본은 남들과 더불어 있는 “복수성”이다. 그녀의 정치철학에서의 “결의”는 고독한 나의 실존적 결의가 아니라 공공적 공간에 참여하는 결의이다. Arendt의 정치적 질서가 “복수의 인간”의 인간조건(human condition) 위에 서있음으로서 강권지배나 전체주의 질서를 배제할 수 있다. 역사상 정치적 질서에는 다음 3가지가 있었다. ① 정치적 질서는 강자의 지배, 이해관계의 균형, 공동체에의 복종 등이라는 사회과학적 접근. ② 칼․슈미트가 대표하는바, “정치”는 집단형성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것. 민족주의, 나치즘, 맑스․레닌․모택동 등의 정치관, 비상시적 질서. ③ 정치적(political)은 고대 그리스의 polis에서 유래한다. 폴리스적 질서는 동아시아의 “가(家)”의 질서 등과 달리, 알렌트는 “신조” 모델과도 구별되는 질서로서 폴리스적 정치질서를 공동체형성의 성원들이 개인의 자기이익을 넘어선 공공성, 공동성을 받아들여 자발적으로 그 질서에 따르는 것으로 가능해지는 시민적 질서이다. 다시 말해서 폴리스형 자유신민적 질서이다. 이 ③이 아렌트형의 정치직 질서인데 이 시민적 정치질서의 성립을 위해서는 “활동”이 가능해야 하고 그 활동을 위한 공공적 공간이 열려 있어야 한다. 이 공공적 공간에서는 평등성과 상호성을 파괴하는 활동은 허용될 수 없으므로 페어․플레이의 rule-following이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폭력 등 타자에 대한 일방적 지배의 아집과 오기가 배제되어야 한다. 정치게임의 룰에서 자기가 밀리면 규범일탈적인 편법동원을 서슴치않게 되는데 이 상승작용은 정치의 파괴를 의미한다. 이러한 공공적 공간의 상호행위에서의 활동은 어디까지나 공공적관심에 기초하고 개인적 탐욕이나 사욕의 추구행위는 금물이다. 그렇지만 “활동”이 정치적 생명을 가지려면 “우연성”을 지닌 비정형적 행위유형으로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서 가치가 있게 된다. 타자가 있는 게임은 그 경쟁판국을 항상 새롭게 마련이고 바둑에서의 정석같은 것을 넘어서는데 명인이되는 이치와 같다. 바둑의 명인이 게임의 룰을 어기고 승리를 탐하려는 더티플레이는 하지 않는다. 아렌트는 “활동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위대성의 기준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정치적 활동이 ① 공공성의 공적관심과 불가분해야 하는 규약과 ② 자기실존의 드러남으로서의 불가예측성, 비정형성, 때로는 몰규범성을 가지는 예술적 창조성이 갖추어져야 한다는데서 정치의 영역이 돋보이게 하려 했으나 여기서 일종의 딜렘마가 느껴진다. 정치적 인간은 활동자=연기자로서 정치활동은 하나의 예술이라 하여 아렌트는 정치에 대해 “至藝”(virtuality)․분투성(agonality)과 연출성 혹은 “관객맞이”(theatoricality)의 요건을 제시했다. 그녀는 특히 정치적 기예(技藝)에서 다시 그 우열의 게임을 하는 승부욕이 있는 경기정신(agonality)을 요청한 것이다. 하버마스가 공공성을 존중하면서 마침내 “보편적 이성의 합의”를 내세운 모더니티를 견지했다면 이와 대조적으로 아렌트는 타자성(他者性)과 차이에 민감한 실존주의 정신이 강하여 정치적 생활(bios politikos)은 어떤 의미에서는 “야만적 경쟁정신”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이런 정치관에서 아렌트는 소피스트에서 폴리스적 정치가 비록되었고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같은 “덕의 실천”이 아니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존재와 현상”의 2분법에 반대하면서 차라리 매키아벨리의 선구자인 프로타고라스에서 “드러남”의 정치의 선구를 찾는다. 매키아벨리의 정치에서는 “활동”이 주가된다. 정치적 활동은 그 규제원리로서 “용서”와 “약속”이 있어야 공평한 정치게임이 보장되고 다시 권위도 활동의 본받을 범례로서 “정치가의 스승” 사장(師匠)이 있어 그 전승이 있어야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제약원리는 “판단력”이라 했다. 정치적 판단력의 전형을 아렌트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 나온 미적 판단력의 원리를 원용하여 “공통감각”(sense common)을 지닌 판단력이라야 “공공적 공간”에 연결된다고 보았다. 공통감각은 타자의 입장에 서서 사고할 수 있고 남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역지사지로 처신할 수 있게 해준다. 칸트의 취미판단에서는 미적 판단이 주관적이지만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 아렌트의 “판단력”이다. “복수의 인간”을 조건으로 전제해 놓은 정치적 활동에서는 그 판단력도 공공적 공간에서 차이와 타자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얻어내는 “공통감각”일 수밖에 없다. 그 공통감각에서 “미적공간”이란 심미주의와 “보편적 합의”(하버마스)가 공존할 수 있을까. 특히 아렌트는 시민성의 공동체 전통을 공통감각의 전형적 전통으로 내세우면서도 그녀는 유대인이라는 특이성과 “적나라한 인간성”이라는 무기밖에 없는 “파리아(pariah)의 감추어진 전통”도 역시 또 하나의 전통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아렌트 정치철학이 가진 포스트모더니티일 수 있겠다. 유태계인 아렌트는 사막의 백성인 유태인이 지닌 유목(Nomad)적 삶에는 끝내 최종적 종착점이 없다는 점에서 여사의 정치철학에도 논리일관된 닫혀진 체계를 강요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공공권의 문제에서 Rorty의 해답은 알렌트보다 더욱 해체철학적이고 철저히 리베럴하다. Rorty에 있어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2분법은 더욱 니체적이고 포스트모던적이다. 그는 아예 사적․공적의 결합을 배제하고 사적인 것에서 자기창조의 자유를 전폭적으로 인정하고 공적인 것도 다만 잔혹성만이 회피해야할 유일한 당위이고 여하한 적극적 유토피아의 제시도 거절한다. Rorty에서는 자기창조와 정의를 다리놓을 수 있는 가교는 없다는 것이며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연결이 있어야 지적정직이라는 통념을 Rorty는 철저히 파괴했다. “자기창조의 어휘는 필연적으로 사적이고 타자와 공유되는 것이 없고 논란의 대상도 아니다. 정의의 어휘는 필연적으로 공적이고 타자와 공유되고 의견교환의 매체가 될 수 있다.” 아렌트에서 정치적 판단력이 미적이라 할 것은 로티에서는 사적인 것에 해당하고 공공권과 무관하다. 이 두 포스트모더니티 사상간에도 “공공권”에 관한 논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 로티에서 공공권에서 생기는 정의의 문제도 “원대한 선의 실현보다 당면한 악의 제거에 힘쓰라”는 칼․포퍼의 소극적 공리주의에서와 같이 반증주의적 접근이다. 다만 리베랄하다는 공통점이 로티․아렌트․포퍼에서 공통점으로 짚어볼 수 있는 것이다. 포퍼는 그의 “세계3” 이론에서는 세계2는 개인의 신념이고 그것이 공개적으로, 객관적으로 제시되어 비판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P1-TT-EE-P2의 세계3의 영역이 과학적 공공권의 탐구자 공동체이고 하이예크에는 자생적 질서로서의 시장시스템이 된다. 토론과 비판에 열려진 자유시민사회에서만이 참다운 “공공권”이 있게 된다. “정치적 활동”이 지식이기 보다는 “기예”에 가깝다고 본 아렌트의 정치예술론에 비하면 포퍼나 로티는 사회공학적이어서 “정치적 인간”의 복권에서는 아렌트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여진다. “개혁피곤증” “정치불신”의 대중사회적 “사회적 인간”에서는 정치가 재미없게 되고 정치적 불감증에 빠져 “정치의 죽음”이 오는 것이다. 매일매일 먹고 사는 소비재대사의 노동위주형 ‘사회적 인간’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시민정치가 여유있는 브르중아의 놀이처럼 비치고 마침내 정치부재의 유토피아를 광신하게 만들기도 한다. 3. 21세기를 앞둔 세기말의 정치 패러다임 전환 1990년을 전후해서 사회주의 붕괴, IMF 금융위기 등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 탈냉전의 세계사적 변화는 그 근본에서 “이데올로기의 종언”이었다. 19세기 이래 서유럽에서는 정치가 이데올로기로 발전된다는 “이데올로기 시대”가 한세기 동안 지배했는데 마침내 소진․종언된 것이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에서는 여전히 진보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정치의 본령인듯이 착각하고 있다. 대표적 이데올로기로는 근대민족주의, 나치즘, 일본의 전전시대의 극우파 군국주의형(일본 파시즘), 마르크스레닌주의, 북한의 수령결사옹위형 “선군”주의적 군사독재의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 등이 있다. 이데올로기는 근대정치에서 “세속화된 종교”의 성격을 가진 광신성을 기본으로 해서 열광적 지지자와 반동분자로 사람을 분류한다. 내셔널리즘 이래 이데올로기 정치에는 “적과 동지”의 2분법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상징조작은 전체론적 유토피아형 정치공학이라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반드시 이상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이 유토피아의 실현을 위해 그 과정의 희생을 요구한다. 주로 정치가 대중적 지지의 열광적 지지동원형이 됨으로서 진보적 이념의 선전선동이 곧 정치라고 보고 대개 “데마고구”형이 되기 쉽다. 그 정치기법은 밖으로 적을 설정하여 자기파의 단합을 얻어내는데 골몰하고 “정치적 공공성”의 영역을 축소시킨다. 이런 이데올로기 정치는 정치가 대중에 대한 사상의식 동원, 중앙지령주의(central command)의 관철, 마침내는 “진리”의 독점적 관리가 된다. 이데올로기 정치의 극한은 조지․오웰의 ｢1948｣ ｢동물농장｣에 그려진 인민의 노예화인 집단농장적 사육동물화이다. 그 정치기법은 종교적 교조를 둘러싼 종교전쟁, 사회주의권의 이데올로기 분쟁에서와 같이 정치가 죽음에 이르는 사투가 된다. 이는 “무한정치”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민주적 시민정치(civil politics)는 “유한정치”이다. 진보주의적 이데올로기 정치에서는 사이비종교적 열광성의 신념이 중심교리가 되어 자기의 정치이념, 정책의 오류불가능을 고집한다. 그로인해 진보주의적 이념 정치는 형실적 행정, 당면한 정책에서 경제실무, 행정노하우, 현장지를 무시하여 애머추어리즘이 수반되고 정치가 유토피아의 광신성에 기초한 나머지 “현장지”(現場知)와 시장적 사고의 결여로 어느덧 반민주적 강권정치로 탈바꿈하는 운명에 처한다. 권력자의 “독백” 명령만 있고 “대화”․“회화”의 정치가 없다. 가장 치명적인 이데올로기 정치의 과오는 공상적 이상의 유토피아를 내세우고 그 실현과정을 무시하며 이미 인류사회가 이룩한 가치있는 제도마저도 기성사회의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전면적으로 일소해 버리는 레닌․스탈린, 히틀러, 모택동, 폴포트 학살공산주의형으로 타락하는 것이다. 그 정형적인 예가 모택동의 농업집단화(인민공사), 홍위병난동, 문화대혁명의 비극이었다. 캄보디아의 폴포트는 농민천국의 농촌공산화를 위해 도시를 파괴하고 안경낀 사람, 외국어 아는 지식인까지 학살하고 농촌집단촌을 만들기를 강행하면서 200만명을 학살했다. 이에 대해 1962년의 덩샤오핑 실용주의는 “흑묘백묘”론을 내걸고 급진적 이데올로기 정치대신에 진보주의의 색깔보다는 시장경제의 실용성을 내세우는 행정실무형 정치로 개혁을 단행했다. 결국 진보주의적 정서를 가진 “혁명” “개혁”의 정치는 시장적 신호를 무시하고 중앙지령주의의 “큰 정부”가 되고 정치를 “바람몰이”로 생각하기도 하고 결국 “무리수” 정치가 된다. 4.19혁명은 이미 1950년 중반부터 싹텄는데 1954년 11월 장기집권을 위한 자유당의 개현안인 “4捨5入 개헌”에 나타났다. 표결 결과 재직 203명중 찬성 135표, 반대 60표, 기권 7표로 가결에 필요한 3분의 2선인 137표에서 1표가 모자라 부결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2일후 자유당정권은 4사5입이란 기상천외의 편법을 동원하여 그 개헌안의 가결을 선포했다. 여기서 민주적 시민정치는 너절하게 이기기보다는 깨끗이 패배를 승복하는 정치윤리의 정착임을 역사의 거울 앞에서 배우게 된다. 4. “바람직한 정치가상” : 問題解決의 정치적 판단력의 수련 마르크스주의, 패시즘 등 이데올로기 정치는 정치의 미래의 이상적 목표를 내거는데 골몰하고 정치과정의 정책행정ㆍ실무적인 정치적 판단력의 수련을 도외시하기 쉽다. 일인독재에서는 “정치부재”가 된다. 마르크스주의의 사회혁명적 과격진보의 극한 투쟁에 대한 대안으로 “정치에 궁극적 목표는 없다. 과정이 전무이다”라고 수정주의자 베른슈타인(Berstein)이 제안했다. 또한 영국의 신보수주의 정치철학자 Oakshot는 「정치에 있어서 합리주의」를 비판하고 두가지 정치를 대비해 보였다. ㆍ미리 확정한 목적지를 향해 직항하려는 강권돌진형 ㆍ험난한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 배의 키를 잡고 침몰하지 않게 능난하게 운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위기관리형 즉 “Neurath 의배” 과연 정치에서 미래의 진보주의적 이상만 내세우고 국민을 집단동원, 의식화해서 개혁목표에로 다그치겠다는 것이 개혁피곤증의 근원이 된다. 진보주의 정치의 소양교육에서 부단히 당면하는 국정문제에 대한 政策決定의 decision-making에서 진보주의의 이데올로기의 청사진에만 매달리면 당면한 행정실무적 문제해결에 유용한 실현가능한 위기관리의 통치 노하우가 생기지 않게 된다. ㆍ 정치는 진보주의 이념의 제시와 강권에 의한 실현 ㆍ 정치를 행정 실무 차원에서의 행정실무의 실천적 테크노 크라트를 동원하여 당면한 위험회피를 위해 실천 가능한 정책의 결단에 힘쓰는 위기관리형 정치 대개 정치의 본령은 정치이념의 이데올로기 교과서에 나오는 일반적 이념․이론․지식보다는 구체적 실무경험에서 단련된 현장체험, 방법지(方法知)가 우선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치지망자는 반드시 특정 전문분야나 사회봉사분야의 현장지(現場知)를 겸비한 대안의 제시여야 한다. 생철학자인 벨구송은 수영술을 예로 들었다. 수영의 숙달에서 먼저 물에 들어가보지 않고 땅위에서 글과 말로 학습하고 물속에 들어가면 곧 익사한다. Oakshott는 자전거의 예를 들었다. 자전거는 머리로가 아니라 몸으로 터득한 노하우로 탈 수 있다. 진보주의 이데올로기가 대안이 아니라 실무적 문제해결 방안이 참다운 대안이다. 가장 전형적인 “정치적 문제”는 이념적 대립갈등으로 서로 용인하기 힘들게 된 대결상황이나 정책결정에서 양자택일이 난감한 문제로 남게되어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것같이 보이는 난감한 당면문제가 다름아닌 “정치문제”이다. 따라서 정치의 능력은 교과서에 나오는 합리주의적 “이성”이 아니라 현장의 실천경험같은 당연한 문제해결의 통치노하우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유능한 정치능력은 정치이념의 학습이나 자신을 전지전능의 신의 자리에 앉아서 내놓는 청사전적 개혁비젼 보다는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사건사례마다 절묘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경험”이오 차라리 머리의 이성이 아니라 몸의 기예(技藝) 같은 것이다. 정치, 특히 민주적 시민정치의 수련과정은 첫째 훌륭한 政治師匠의 제자가 되어 그 정치기예를 모방으로 전승하는데서 기틀이 잡힌다. 예를 들어 “서편제”는 “동편제”와 어떻게 다른가를 말이나 글로서 설명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과거 대통령, 정치가들의 전기, 자서전 등 이야기체로 써진 “역사”가 정치학의 교재가 된다. 그러나 우리정치에는 좋은 “師匠”이 없어 반교사밖에 되지 않는다. 4.19혁명은 이미 1954년 12월의 장기집권을 위한 4捨5入 개헌에서 싹텄는데, 그런 반교사를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오기의 무수리 편법의 정치의 출현은 정권 말기 증상이다. 여기서 “정도의 정치”로의 발상전환이 요청됨을 배울 수 있다. 예로부터 정치가의 교육적 거울로서 ｢資治通鑑｣이 있는데 참다운 정치는 구체적 역사의 사례에서 정치가가 어떤 결단을 내렸는가의 말하자면 “정치 판례 연구”가 참다운 정치교재가 된다. 바람직한 정치가의 모범은 솔로몬의 명판결을 지향해야 한다. 우리나라 재판의 판례사에서는 장준택판사의 명판결이 기억에 남아있다. 110여명의 유부녀를 농락한 박인수에 대해 일반의 예상을 뒤집어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는 판례를 남겼다. 다만 6법전서의 암기형 법관에게는 이런 법적 판단력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적 판단력이 비상시적 “결단”으로 오해되어서는 안되고 “침묵하는 다수”와의 감성적 공감의 공공권에 위치해야 한다. 그러면 21세기 정보의 홍수인 정보화시대에는 시민들이 수많은 각가지 정보와 지식, 이념 앞에서 정보소화불량증에 걸려있다. 과거 이데올로기 정치시대에는 많은 사건․뉴스를 마르크스주의의 “계급투쟁” “자본가의 횡포” “착취” 등 단순명료한 구호를 제시했다. “단순성의 신화”인 진보주의 이데올로기는 그 나름의 의미부여 기능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선동적 매력이 있는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오늘의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정치가는 그런 이데올로기적 “구호”(slogan- engineering)의 구닥다리 수법을 벗어나 정치적 상상력의 의미부여로 시민들에게 정치적 판단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과연 지난 3년 간의 한국정치에 대한 의미부여를 한다면 무엇이 될까. 여당의 관점에서는 여소야대의 구도로 인해 개혁의 걸림돌이 되었다는데서 생긴 “수의 정치”이며 이 수의 장벽을 “무리수”로 탈피하려는 몸부림이 되었다. 또한 3년 간의 정치적 사건을 열거해 보면 北風ㆍ鐵風ㆍ稅風ㆍ文風ㆍ옷風…의風ㆍ安風ㆍ 言風등 대개 “바람몰이”로 총괄된다. 그 중에는 평지풍파가 많아서 “풍파정치 3년”이라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의미결핍증의 목마름을 해갈해주는 청량제가 되어 줄 것이다. 새세기의 신한국 건설을 위한 바람직한 정치가의 본보기는 ① 정치가 죽음에 이르는 사생결단도 아니고 이데올로기의 이념조작이 아니고 시민사회와 시장의 자생적질서를 존중하는 시민정치형 ② 따라서 정치이념의 교과서형 보다 다양한 정치적 현안문제에 대한 절묘한 정치적 판단력의 체험지존중,대안있는 정치 ③ “자치통감”적 정치독서, ④ 그리고 “법의 지배”의 기반 위에서 정치게임을 하는 정치윤리적 규범있는 rule-following의 정치, 너절한 득세․영달보다는 차라리 깨끗이 패배를 승복할 줄 아는 정치가의 정도의 확립 즉 등장보다 퇴장의 때를 놓치지 않고 멋지게 出退하는 것이 명배우인 듯이 정치가의 퇴장의 미학을 실천하는 것이 새정치가 수련의 “修己治人”의 도이다. 相克의 정치는 이데올로기 정치의 속성인데 게임에서 열세로 기울면 게임판을 깨거나 신당창당을 거듭하기도 하고 게임판 밖에서 대북관계 등에서 무리수나 매스터․키를 찾아 역전승을 모험, 도박한다. 이와 반면에 相生정치는 공정한 게임이라면 패하더라도 룰을 지키고 근본적으로는 다양의 통일을 위해 민주적 합의로 시민의 “침묵하는 다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원대한 유토피아의 진보보다 당면한 사회악 제거 등 사회개선에 힘쓰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이다. 신일철 (고려대 명예교수ㆍ철학 / 시민회의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