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부안 짝 안 나려면 - 김일영
	2005-07-14
평택, 부안 짝 안 나려면 평택에서 동맹과 평화가 충돌하고 있다. 이 충돌을 방치할 경우 재배치를 위해 의정부나 동두천을 떠난 주한미군이 한국 내에서 기착할 곳을 찾지 못해 이땅을 떠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일부 해외언론이 주한미군사령부의 해외 이전 가능성을 보도하는 것도 이런 우려를 부채질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2년간의 논의를 거쳐 전국에 산재된 미군기지를 오산.평택과 부산.대구 두 곳의 허브(hub)로 재배치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용산기지에 있던 한미연합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 등은 2008년까지, 정부와 동두천 주변의 미2사단 기지는 2008년 이후 각각 평택으로 옮기기로 의견을 모았다. 본래 평택에는 151만 평 규모의 미군기지가 있었는데, 이전될 부대를 위해 총 349만여 평의 부지가 새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에 토지가 수용될 지역의 일부 주민과 외지의 135개 시민단체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에 나섰고, 그들이 경찰과 충돌한 것이 지난 주말 평택 사태의 전말이다. 평택 사태에는 여러 차원의 문제가 뒤섞여 있다. 주민들은 생존권과 경제권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일부 주민은 미군기지 확장으로 삶의 터전을 내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반발하고 있지만 그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외부의 시민단체들은 보다 거시적으로 평택 문제에 다가서고 있다. 그들 주장의 핵심은 미군은 한반도 평화의 장애물이므로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따라 주한미군을 평택기지로 재배치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전략적 유연성 자체가 이미 한반도의 전쟁 억지라는 주둔의 본래 목적을 벗어나는 것이므로 미군이 이땅에 계속 머물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단체들은 평화를 명분으로 평택 문제를 전국화 내지는 정치화하려 하고 있다. 시민단체의 평화 논리는 정부나 보수진영의 동맹 논리와 충돌하고 있다. 한반도 전쟁 억지와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위해서는 한.미 동맹이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게 동맹의 논리다. 이들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서도 주한미군이 한반도 바깥으로 전개되는 측면만 보지 말고 유사시 외부로부터 한반도로 신속하게 투입될 수 있다는 측면도 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들은 동맹을 위해 평택 문제가 비정치적인 국지적 문제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 이들은 이 문제가 미군 철수라는 근본적 차원의 요구가 아니라 한.미 동맹의 불평등성 개선 같은 절차적 차원의 노력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평택 문제는 여러가지 점에서 부안 사태와 흡사해질 소지가 있다. 부안 사태에서도 주민들은 생존권 논리와 경제적 이해의 논리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러나 외부 세력이 개입해 환경과 개발의 논리가 충돌하면서 문제는 전국화.정치화됐고 해결은 점점 어려워졌다. 평택이 부안 사태처럼 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생존권과 경제권을 둘러싼 주민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려고 적극 나서야 한다.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클수록 외곽 단체의 개입 여지도 그만큼 커진다. 따라서 내부 갈등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것이 문제의 전국화를 막는 지름길이다. 다음으로 정부는 평택 문제를 바라보는 동맹의 시각과 평화의 시각 사이의 접점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평택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국의 외교.안보 전체와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는 대미관계와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자주파'와 '동맹파'로 나뉘어 남남 갈등을 겪었고, 평택 사태도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평화와 동맹은 반드시 배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평화는 반드시 평화로운 방법으로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동맹은 평화를 확보하는 좋은 방안일 수 있다. 정부는 평택 문제를 잘 해결해 동맹을 통한 평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중앙일보 2005. 7. 1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