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선발권은 대학 몫이다 - 남승희
	2005-07-08
학생선발권은 대학 몫이다 정부가 ‘3불 법제화’는 물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서울대와 전면전을 불사하겠단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지금 불안하다. “이제는 대학이 알아서 하게 해야 해. 기여입학제도 그래. 대학이 투자할 곳은 많고 장학금 비율도 늘려야 하는데, 등록금 마음대로 못 올려, 학생 수 줄어, 동창들한테 기부금 달라는 것도 한계에 왔고,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 받기는 쉬운가?”(재수생을 둔 한 학부모) “이 정권은 엘리트 집단을 싫어한다는 느낌밖에 안 들어. 그리고 국가경쟁력을 최우선에 두지 않는 것도 확실해. 대학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서 이젠 정말 전쟁이라도 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도 들고. 30% 지역할당제면 충분한 것 아닌가? 세계경쟁력도 생각해야지. 정부는 본고사가 도입되면 사교육비가 늘어난다고 막는데, 어떤 정책으로도 사교육비를 줄인 적이 있나?”(비서울대 대학생 자녀 둘을 둔 학부모) “학생과 학부모들이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서울대 주장에 동의해요. ‘오지선다형’ 수능으로 ‘창의적 사고력’을 측정하기는 어렵죠. 본고사의 좋은 취지와 교육 방법의 다양성을 접목해서 좋은 입시제도가 나와야 ‘미래’와 ‘세계’라는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죠.”(이민대행 회사에 근무하는, 한 때는 열혈 노사모였던 30대 직장인) 국민들은 이번 사태가 교육적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관점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이해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누구도 본고사가 정확히 어떤 형태인지, 왜 도입해서는 안 되는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70년대 대학 응시 자격시험인 ‘예비’고사가 있던 시절, 대학별 자체 시험 과목으로 문제를 출제했던 것을 ‘본’고사라고 불렀다. 서울대가 수능시험을 자격고사화, 즉 ‘예비’고사화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대학별로 시행하는 시험이 ‘본’고사라는 것인지, 국·영·수 중심의 교과목 내용이 포함되어서인지, 내용이 어려워 학교 공부만으로는 입시 준비를 하기가 힘들어서인지 너무 헷갈린다. 정부는 서울대 입시안이 특목고나 자립형 학교,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유리한 형태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식이다. 그런데 공부 잘하는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면, 또 대학이 학생을 대충 뽑아야 한다면 아마도 세계가 웃을 것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사교육의 산물이니 뭐니 하면서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라면 이 나라에 남아 있을 인재가 누가 있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정의롭지 못한 사회, 불공평한 사회다. ‘통합형 논술고사’가 본고사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어떤 능력의 인재를 선발하고 양성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통합적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학생 선발 방식은 이미 보편화한 지 오래다. 국어와 수학을 중요한 도구 과목으로 보고 이를 중심으로 학력을 검증하기 위해 대학별로 학생이 원하는 시간에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대학도 수없이 많다. 200쪽 분량의 자서전이나 인생관과 세계관을 에세이 형식으로 작성하게 하는 방식 또한 보편적이다. 이 두 가지를 합하면 그것이 ‘통합형 논술고사’가 되지 않을까? 국가가 ‘뛰어난 인재’ 양성을 소홀히한다면 결코 ‘좋은 정부’라 할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이 할 일은 법 만능주의, 통치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3불 법제화’와 같은 구시대적 행정권·입법권 남용의 유혹을 이겨내는 일이다. 정책은 과학적 근거에 의해 수립돼야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고등학교 간 학력차를 인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 대학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방안, 대학별 특성을 고려한 자율적 학생 선발 방안을 고안해 내는 일이 교육 발전은 물론 국가 발전을 위해서 정부와 여당이 해야 할 몫이다. 남승희 (명지전문대학 교수 / 바른교육권실천행동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5. 7. 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