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구상의 한계 - 정진영
	2005-07-08
연정구상의 한계 ‘비상한 사태’를 맞고 있는 국정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과 연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대통령의 연정구상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에 있었던 여권 수뇌부의 비밀 주례모임인 ‘11인회의’에 참석해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발언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청와대 홍보수석은 4일 기자들과 만나 이에 대한 배경 설명을 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교착 상태에 빠진 국정 운영을 타개’하기 위해 생각하고 있는 방안들 중의 하나이다. 둘째,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혼합한 헌법상의 권력구조가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교착상태를 불러오고 있다. 셋째, 우리 국민들이 정당을 중심으로 정치를 생각하는 점을 고려할 때 권력구조와 정당제도가 맞지 않으며, 이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조기숙 홍보수석은 사견임을 전제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고려할 때 내각제가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금 대통령과 여당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여권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비상사태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대통령 지지도 27.2%, 여당 지지도 19.3%는 대한민국이 지금 효과적인 통치가 불가능한 상태임을 말해준다. 선진 민주국가에서라면 내각불신임이나 대통령 사임이 거론되고도 남을 수준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너무 낮아 효과적인 정책 수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는 이러한 위기사태를 맞아 국민에 대한 으름장과 협박으로 정책을 추진해 보려고 한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헌법처럼 바꾸기 힘든 부동산 대책을 내놓겠다’며 ‘강남에 아파트 가진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나도록 하겠다’는 식의 발상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자극적인 발언을 대통령이 칭찬까지 했다고 하니 청와대가 지금 얼마나 정신이 없는지 짐작이 간다. 연정구상도 이러한 위기 국면의 타개책으로 고려되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위기의 원인에 대한 잘못된 분석에 기초하고 있고, 따라서 처방도 잘못된 것이다. 첫째, 조난 상태에 처한 배에 누가 함께 타려고 하겠는가. 대통령의 연정구상에 주요 정당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함께 침몰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여권에서는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마저 뛰어내리려 하는 판이다. 당의 기강을 강조하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여권이 맞고 있는 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은 잘못된 권력구조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집권세력의 잘못된 인식에 있다.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자신들도 지키지 못하는 도덕적 기준으로 남을 공격하는 것이 얼마나 비도덕적 행위인지를 모르는 것 같다. 정책은 옳은데, 국민의식이나 투기꾼들이 문제라는 식의 발상은 권위주의 시대에나 할 수 있는 소리다. 한국의 현대사는 경제 발전과 민주화의 측면에서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사례이다. 독재의 어두운 면을 기준으로 이 모든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부정적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보면서 국민통합을 이룩할 수는 없다. 셋째, 권력구조의 혼합에 따른 문제를 지금까지 우리는 당내 민주화, 상향식 공천, 당정분리 등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해 왔다. 대통령중심제에 맞는 정당제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내각제 제안은 이러한 발전 노력을 다시 되돌리자는 이야기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과연 정당 개혁을 위한 노력을 얼마나 진지하게 해왔는지 반성해야 한다. 국민 다수가 여전히 대통령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 말이 되면 으레 연정이나 내각제 이야기가 나왔다. 권력구조 차원에서 임기말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는 위기만 더욱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을 탓하는 것을 배우기 전에는 여권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해결책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진영 (경희대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한국일보 2005. 7. 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