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자치 10년, 갈 길 멀다 - 이달곤
	2005-06-30
민선자치 10년, 갈 길 멀다 민선 자치 10년은 민주적 국정의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기간이었다. 현대적 지방정치의 출현으로 통치의 대상이던 국민이 시민정치의 주인이 되는 길이 열렸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선출되고 의회가 구성되면서 한국은 ‘밑으로부터의 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지방자치의 출범은 권위주의 정권의 퇴조, 세계화와 정보화의 진전 등과 궤를 같이하면서 한국의 민주화를 빠른 속도로 공고화하는 주요한 동인이 됐다. 마침 많은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과 함께 공론(公論)에 의한 정치를 가능하게 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행정 면에서도 지방자치는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지방정부 지도부의 임기가 장기화되고 주민 중에서 대표가 선출됨에 따라 보다 안정적이며, 주민의 입장에서 행정을 개조해 나가기 시작했다. 권위주의적, 폐쇄적 행정문화가 친절하고 개방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으며, ‘우리’라는 지역공동체 의식이 행정의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지방마다 그 지역의 고유성과 매력을 증대시키는 노력이 한창이며 지역개발 붐이 일기도 했다. 재정적인 측면에서는 중앙정부의 교부금이 대폭 상향되어 지방의 재원이 늘어났다. 아울러 자치로 인한 비용을 절감하고 경제력과 재정력을 신장하기 위한 조치도 취해졌다. 도(都)·농(農) 통합으로 자치단위의 규모를 키우는 개혁도 있었고, 사회간접자본의 축적과 산업 고도화를 통하여 지역경쟁력을 키우는 기업 및 자본 유치 등과 같은 조치들이 중앙과 지방의 협력 속에서 진행되었다. 재정운용 과정에서는 지방의 자율을 확장하는 방향에서 미세한 제도적 개선이 있었다. 하지만 지방자치가 풀어야 할 과제 또한 적지 않다. 현재 운용되고 있는 지방자치제도는 중앙 정치권과 정부가 만들어준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인 지방의 사상과 의견이 덜 반영되어 있다. 이제 다양성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지방이 선택적으로 좋은 제도를 찾아갈 수 있는 지방제도의 다원화를 시도하여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농어촌, 중소도시, 대도시 등에서 지역의 실정에 맞는 거버넌스(governance) 유형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단체장의 선출 방식과 의회의 구성, 주민과의 관계 등을 비롯하여 권한과 의무에 대해서도 다양한 유형의 제도를 고안하여야 한다. 아울러 지방체제의 기본 구조인 계층제, 구역, 대도시 체계, 특별행정기관, 기능 재배분, 지방세제, 교육자치, 자치경찰제 등에서 보다 획기적인 조치를 강구하여야 인구 과밀화된 한국의 실정에 부합하는 제도를 재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현행 자치제는 1950년대 초기 자치제의 기본 골격을 따른 것이므로, 21세기 초반 변화된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기 위해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철학은 지역 주민이 그들의 삶의 이상을 지역에서 실현할 수 있는 정치·행정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방사회의 지역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제도설계와 운용방식이 필요하다. 현재 부각된 문제점에도 단기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정쟁화되고 과도하게 정치화된 지방의 참여, 정부운영, 재정운용을 보다 합리적이고 상생(相生)의 에너지를 창출하는 방향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단체장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 내부경영의 비효율, 전시행정과 형식성, 재정운용의 난맥상 등과 같은 지방정부 내부의 문제는 적절한 견제와 우수한 경영능력을 가진 인재를 계속 수혈받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아울러 중앙과 지방 간의 갈등, 지방정부 간의 갈등과 과도한 경쟁 등을 개선하는 기구와 제도를 추가적으로 도입하여야 할 것이다. 이달곤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조선일보 2005. 6. 3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