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성장의 새로운 과제 - 조희문
	2005-06-20
한국영화 성장의 새로운 과제 거품이 걷히는 과정인가? 과도기적 적응 과정인가? 성장 일로를 걷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영화지만 내부의 구조적 불안이 만만치 않다. 겉보기와 다르게 수익 구조가 빈약한데다 몇몇 스타에 의존하는 제작 관행, 홍보 마케팅에 비용을 쏟아붓는 무한경쟁의 후유증이 갈수록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만도 110억원을 들였다는 ‘역도산’을 비롯해 80억원 안팎의 ‘남극일기’ ‘달콤한 인생’ ‘주먹이 운다’ ‘혈의 누’ 같은 영화들의 흥행 성과는 실망스러웠다. 대부분 당대의 최고급 스타들을 기용한 경우였다는 점에서 투자자나 제작자들이 느끼는 고민이 만만치 않다. 자생적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큰 흥행을 겨냥하는 ‘대박’ 영화들이 늘어나면서 제작 규모가 급격하게 커지고 있지만 시장 규모의 확대는 상대적으로 더디다. 2000년의 연간 영화 관객 수는 5000여만 명 수준이었던 데 비해 지금은 1억2000여만명 정도로 늘었다. 5년여 사이에 관객이 2.4배 늘어났지만 제작비는 5배 정도로 급상승했다. 한때는 비디오 시장이 영화계의 수익을 일정 부분 보상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그 비중이 미미하다. 케이블, 위성방송의 확대, 인터넷상의 불법 복제 등으로 비디오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해외 시장도 소문만큼 실속을 얻은 경우는 찾기 어렵다. 한두 작품이 이익을 내는 경우가 있지만 안정적인 수익 구조로 자리잡기까지는 아직 멀다. 결국 증가한 제작비를 국내 시장에서 회수하지 못하면 그만큼 손해로 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급 시설을 갖춘 멀티플렉스 극장의 증가는 수백 개의 상영관에서 동시 상영하는 방식을 일반적인 상영 형태로 바꿔 놓았다. 전국을 연결하는 동시 흥행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시장을 키운 측면도 있지만 개봉 1~2주 만에 승부를 내야 하는 위험 부담도 함께 커졌다. 제작자나 극장은 초기 흥행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스타를 기용하고, 규모가 큰 볼거리 위주의 구성을 선호한다. 거친 욕설이나 잔혹한 폭력, 난폭한 성 묘사 등을 주요 표현 수단으로 사용하는 영화들이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해서라도 관객의 눈길을 잡겠다는 생존 경쟁의 한 단면이다. 늘어난 제작비의 대부분은 배우 캐스팅과 홍보 마케팅에 들어가고 있다. 선두에 있는 스타급 배우들의 출연료는 4억~5억원을 쉽게 넘나들고 거기에다 흥행 수익의 일부를 요구하는 경우도 흔하다. 몇몇 스타가 영화시장의 이익을 싹쓸이하고 있는 양상이다. 서로 간의 무한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홍보에 나서야 한다. 제작비만큼의 비용을 홍보에 들이는 것은 포장과 판촉이 흥행 성패의 마지막 단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같은 구조 속에서 영화제작자는, 투자자에게 매달리고 배우의 기분을 맞춰주며 홍보에다 돈을 쏟아붓는 처지의 제작 하청업자 신세나 다름없다. 흥행을 해도 남는 것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영화계의 제작 구조가 불안하다는 것은 한국영화의 기반이 위태롭다는 뜻이다. 영화 제작이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이기는 하지만 한탕에 승부를 거는 투기장이 돼서는 안 된다. 제작자들은 ‘대박’의 유혹을 받더라도 제작 규모의 내실화를 통한 규모의 다양화를 회복해야 한다. 새로운 배우를 발굴하고, 다양한 관객을 부를 수 있는 기획을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스타들은 자신들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영화계의 안정을 도와야 한다. 기본 출연료를 낮추고 이익이 나면 조건에 따라 나누는 ‘흥행연동제’를 고려할 수도 있다. 이익은 막무가내로 챙기고 손해는 제작자에게 떠넘기는 지금의 구조는 ‘한국영화의 사막화’의 전조가 될 수도 있다. 조희문 (상명대 교수, 영화평론가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6. 1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