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공조 '절반의 성공' 넘어서자면 - 남주홍
2005-06-13
韓美공조 '절반의 성공' 넘어서자면 외국의 국제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금 한국 사회에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3대 현상이 있다는 지적이 자주 나온다. 한국 정부와 상당수 국민들이 북핵 문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점이 그 하나이다. 그리고 입만 열면 통일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북한의 인권 문제에는 무관심하다는 점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 한국이 미국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았으면서도 유달리 반미 감정이 심하다는 점이 그 나머지이다. 모두 뼈아픈 지적이며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실 이번 한미 정상회담도 바로 이같은 현상이 가져온 양국 지도부 간의 의사소통 문제(communication gap)와 신뢰성 위기 때문에 실무적으로 급격히 추진된 것이다. 그래서 지난 10년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회담’이 된 것이다. 북핵 위협에 어떻게 공동 대처할 것인지는 곧 한미 안보동맹의 미래에 관한 것이고, 미측이 정상회담에서 처음 제기한 북한 인권 문제는 미국이 주창하는 ‘자유의 확산’ 등 동맹의 가치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두 정상이 한미관계에 이상이 없음을 거듭 강조한 것은 그만큼 동맹의 균열을 일으키는 반미 및 반한 정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일단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절반인 것은 공동 위기관리의 시험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우선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미국은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고 한 선언에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동맹이 앞으로도 돈독할 것”이라고 화답한 것은 양측이 노 대통령 말대로 ‘원칙에 완벽히 합의’했다는 뜻이다. 이 원칙이란, 한미 양국은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이제 북한이 조만간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으면 어떠한 형태든 대북 압박은 피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미 쌍무관계에 있어서도 동맹의 확고한 유지 원칙은 재천명했으니 나머지 현안들은 실무 협상을 통해 풀어가자는 ‘대승적 합의’를 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앞으로 구체적 방법론도 잘 합의될 것인지 여부에 있다. 자칫 잘못하면 ‘절반의 성공’이 ‘절반의 실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다음의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볼 수가 있다. 첫째는 지금처럼 북한이 6자회담에 계속 불참하면서 핵 개발을 강행할 경우이고, 둘째는 북한이 회담에는 복귀했으나 미·북 간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회담이 장기화되는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는 최악의 경우이다. 현재로선 그간의 미·북 실무 접촉으로 보아 두 번째가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나머지 변수도 배제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황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이 부시 대통령의 표현대로 ‘한 목소리’를 내려면 이러한 단계별 상황 설정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실무 공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범주 안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이나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및 작계5029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미 양국은 북한에뿐만 아니라 상대방에도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고, 한미 관계를 이간시키기 위한 북한의 집요한 ‘민족공조’ 공세는 더 기승을 부릴 것이다. 북한도 이제 우리가 제공할 대화 유인책이나 더 이상 미국을 설득할 명분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어쩌면 미국의 인내심 한계로 인한 행동이 북한 지도부를 자극하는 문제보다 더 통제하기 어려운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시간이 갈수록 북한은 더 고립되고 그만큼 더 불리한 게임을 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우리 정부도 한미 관계는 노 대통령 말대로 이제 몇 가지 ‘작은 문제들’만 남아 있다고 자만하지 말고, 국제정치는 항상 이 작은 문제들을 실천함에 있어 언행의 불일치가 큰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철저히 유의해야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가 한·일 및 중·일 관계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노무현정부의 외교안보 사고방식과 행동 양태가 보다 실용적·전략적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 국제정치학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6. 13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