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개혁피로증인가 - 박효종
	2005-05-25
참여정부 개혁피로증인가 참여정부가 집권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초기의 ‘혁신’이나 ‘개혁’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태의연한 모습들을 노정하고 있는 것 같다.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의혹이 터져 나와 권력비리로 굳어지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이번에는 충남 당진의 행담도 개발사업에 대한 의혹이 불거져 나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물론 행담도 개발사업은 아직은 의혹 단계에 머물러 있고 감사원이 진상조사중이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차차 베일을 벗고 있는 의혹의 내용들을 보면 심각한 것이라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하다. 서남해안 개발계획과의 연관성을 딱 잡아내기 어려운 사안인데도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이 ‘행담도 개발㈜’의 채권 발행을 위해 추천서를 써주었다는 것도 문제이고, 또 도로공사가 가진 ‘행담도 개발’ 지분이 10%에 불과한데도 100% 책임을 진다는 계약 내용도 석연치 않다. 이 사건도 그 동안 불거져 나온 ‘게이트’들의 유형을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처음에는 당사자들이 한결같이 억울하다고 잡아떼며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검찰 조사가 시작되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과거의 사례를 보면 청와대나 감사원이 나서기도 했는데, 하나같이 봐주기의 면피성 조사나 면역력을 길러주는 조사여서 그런지 결과가 영 신통치 않았다. 현미경을 들이대며 파헤치는 언론의 탐정적 마인드가 없었다면, 좀처럼 그 치부가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금은 누구나 개혁을 부르짖기 때문에 ‘개혁’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보통명사’화했다. 하지만 노무현정부가 출범할 당시만 해도 개혁은 비장한 의미를 가졌었다. 그 전의 김대중정권에서 각종 ‘게이트’형 부정부패 사건, 특히 대통령의 아들들을 비롯한 실세들이 권력을 오·남용한 사건이 유난히 많이 터졌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 그런 사건들이 사법처리로 일단락됐다고는 하지만, 집권 세력의 부패한 모습에 격앙됐던 국민의 분노가 생생하다. ‘국민의 정부’를 이어받은 ‘참여정부’로서는 이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 왔다. 그래서 그런지 노무현정부의 초기에는 부정부패 스캔들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시간이 가면 권력이란 부패하기 마련인가? 또, 권력이 탄탄해지면 도덕적 해이가 생기는 것인가? 집권당이 안정된 의석을 차지하고, 탄핵정국을 일거에 극복하면서 자만심이 생긴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개혁피로’현상을 보이고 있단 말인가. 어느 정부보다도 개혁을 소리 높이 외쳐 온 이 정부가 이 정도의 행군 여정에서 ‘개혁피로증’을 느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의혹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여정부의 도덕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그 동안 노무현정부는 ‘코드인사’나 아마추어적인 정치, 혹은 포퓰리즘적 정치나 편가르기 인사와 같은 내용으로 비판을 받았을지언정, 정권의 입장에서는 파렴치한 범죄에 속하는 권력형 비리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할 수 있다. 그 점에 있어 깨끗한 정치의 구축에 일조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깨끗한 정부에 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 끝은 불신일 수밖에 없다. 신뢰는 쌓아가기 어렵지만, 불신은 한두 번의 잘못으로 굳어지게 마련이다.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이 아니겠는가. 참여정부는 그 자신이 혹독하게 비판해온 ‘낡은 정치’, 기성정치와 차별성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비리와 의혹에 대처하는 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과연 이 점에 있어 참여정부는 자신이 있는가? 참여정부는 개혁을 외치는 일 못지않게 도덕성 회복을 외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5. 5.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