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규제보다 장려를 - 김정호
	2005-05-24
재건축 규제보다 장려를 낡은 집을 헐어 내고 더 넓고 좋은 집을 짓겠다는데, 정책으로 방해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20년 지나면 재건축이 가능했던 것을 30년 넘은 것으로 바꿨다. 개발이익을 환수한다고 일정 호수 이상을 소형 평형으로 지으라고 하더니 이제는 그렇게 지어야 하는 면적까지 규제한다. 게다가 얼마 안 되는 면적을 쪼개어서 임대주택도 지어야 한다. 개발이익 환수라면 돈으로 거두어도 될 텐데 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쓰는 것은 앞으로 지어질 새 단지의 주거 환경을 악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래야 수익성이 더 떨어져 재건축하려는 의욕이 사라지고 값도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서도 단독주택 지역 내의 다가구주택 재건축은 더 쉽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재건축 규제도 또 하나의 강남 때리기인가? 그렇게 둘러 가느니 차라리 서울 강남 지역의 재건축을 아예 금지하는 편이 더 솔직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재건축 억제의 가장 큰 목적은 아파트 값을 잡는 데에 있을 것이다. 최근에 등장한 규제들이 재건축이 될만한 아파트의 값을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길게 보아서도 그럴 것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재건축은 주택공급을 늘리는 과정이다. 재건축을 통해서 기존의 집이 헐려나가기도 하지만, 새로 지어지는 집들은 헐리는 것보다 더 좋고 많다. 그래서 집이 다 지어지고 나면 주택공급이 증가해서 부근 일대의 주택가격은 안정된다. 새로운 좋은 집들이 인근 동네의 주거환경도 좋게 만든다. 주택정책의 목적이 주거환경을 좋게 만들고 주택가격을 떨어뜨리는 데에 있다면 재건축은 억제가 아니라 장려돼야 한다. 재건축은 소중한 토지 자원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예전에 땅이 상대적으로 풍부했을 때에 지은 아파트들은 밀도가 낮다. 그건 토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재건축은 토지의 이용 밀도를 현재의 상황에 맞게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해서 과거보다 더 많은 집들이 공급되면 주택 가격도 안정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재건축에 대한 정부 정책이 반대의 방향을 택하는 것은 당장 눈앞의 목표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재건축 과정이 모두 끝나려면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는 일, 철거·터파기·건축·외장공사 등이 모두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 과정들을 모두 거쳐야 좋은 결과를 누릴 수 있다. 그 전까지는 머리 아파 피하고 싶은 일들만 널려 있다. 주민들이 헐리는 주택을 빠져나와 인근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일대의 주택 임차료와 매매가격이 오르게 된다. 먼지도 날리고 인근의 교통도 복잡해진다. 무엇보다 두통거리는 재건축이 확정되고 나면 해당 아파트의 값이 치솟는다는 것이다. 오르는 가격은 헐릴 아파트가 아니라 미래에 새로 지어질 좋고 넓은 아파트의 가격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가격은 올라가고, 그것이 전체의 아파트 가격을 올린 것으로 인식된다. 그렇게 해서 공급이 증가하면 다시 값이 내리겠지만, 그것은 재건축이 다 끝난 후에야 나타날 효과다. 200만호 건설계획이 시작된 것은 1988년이었는데 그것으로 인한 가격 하락 효과는 1991년부터 본격화했다. 주택공급 확대 정책의 효과는 새로 지어지는 집으로의 입주가 본격화하고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임기가 짧은 정치인이나, 언제 인사 이동될지 알 수 없는 공무원의 입장에서 재건축은 골치 아픈 존재가 돼 버린다. 그래서 최대한 재건축을 피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국가의 긴 장래를 생각한다면 누군가는 그 힘든 일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하철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지하철 건설의 목적은 교통소통을 좋게 하는 데 있지만, 공사 기간에는 오히려 길이 더 막힌다. 그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지하철의 편안함을 누리고 있다. 재건축도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좋은 일들이 찾아온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5. 2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