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특성화·다양화가 관건 - 남승희
	2005-05-17
고교 특성화·다양화가 관건 대학입학 전형제도가 큰 고비를 맞고 있다. 정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과 대학입학 기본계획에 근거해 추진해 왔던 ‘3불 정책’을 법제화해 대학별 본고사와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금지를 못 박으려는 의지를 나타냈고, 주요 대학들은 물론 사회 일각에서는 대학의 학생선발권을 완전 자율화해야 한다고 주장, 양측이 그 어느 때보다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방침대로 정부의 대입 전형 규제가 강화되는 것이 옳은 방향일까, 대학들의 주장대로 학생선발권을 대학 자율에 맡기는 것이 옳은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학생선발권은 대학에 맡기는 것이 옳다. 대입 전형은 고등학교와 대학이 서로 연계·협력하고 합의해서 할 일이다. 정부의 역할은 고등학교에서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고 대학에서 이들을 발굴, 잘 육성해낼 수 있게 교육체제를 정비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정부는 대학들이 성적으로만 학생을 뽑으려 한다고 비판한다.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완전히 주면 그런 경향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대학은 다양한 인재를 발굴할 객관적인 자료가 부실하고 변별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추천서도 천편일률적이고 봉사활동이나 특별활동, 클럽활동 실적도 차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란다. 학부모 역시 비교과 영역이 반영되기를 바라면서도 다른 아이가 이것으로 이익을 보면 공정성에 의문을 품는다. 여기서 역설이 가능하다. 대학의 학생선발 제도를 바꿔서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와는 반대로, 학교교육이 정상화돼야 대입 전형제도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모든 학교를 하나의 틀로 묶어놓고 다양한 인재를 발굴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정부가 대입 전형 정책에 소진하고 있는 예산과 인력, 시간과 정성을 다양한 학교를 만드는 일에 쏟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며칠 전 교육혁신위원회가 200여개의 특성화 고등학교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들 학교를 교원임용, 교육과정 편성, 학생 선발 등이 자유로운 자율학교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더욱 획기적인 것은 교육기관의 운영체제를 개선하여 지원 주체를 산업체와 지방자치단체 또는 정부로 다원화해 학교의 벽을 허물었다는 점이다. 사회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학교경쟁력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혁신위의 안이 반가운 것은 그 동안 ‘이류 교육’으로 인식돼 왔던 직업교육을 획기적으로 혁신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특성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고등학교 체제를 정비한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다양성과 자율성 그리고 창의성이 결여된 교육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학교는 다양화·특성화 돼야 하고, 특성과 자질 면에서 개인차가 뚜렷해지는 시기인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다양화된 학교나 특성화된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설립되고 개설돼 대학과 긴밀히 연계돼야 한다. 자질이나 적성과는 무관하게 성적에 맞춰 진학하는 관행과 현장 적응력이 떨어지는 ‘학력 거품현상’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현재 교원 임용, 교육과정 편성, 학생 선발 등이 허용되는 학교는 2000여개의 고교 중 6개 자립형 사립학교, 18개 대안학교, 시·도별 1개씩의 과학고와 외국어고가 전부다. 200여개의 특성화 학교가 설립되면 상황은 개선되겠지만 다양한 교육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교가 더 늘어나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학생의 학교선택권이 확대되고 학교가 경쟁하는 체제가 돼 교육의 질 향상은 물론 대학의 다양한 인재 발굴도 가능해질 것이다. 여기에다 대학의 책무인 학교 교육 발전을 선도하는 역할과 학생·학부모의 부담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더해질 때 대입제도의 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논의는 대학의 학생선발권 자율화를 전제로 한 것임을 분명히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상품인 ‘대한민국 산(産)’ 휴대전화나 자동차를 개발해내는 탁월한 인재를 발굴·양성하는 것도 대학의 중요한 몫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수·교육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 바른교육권실천행동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5. 5. 1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