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 박효종
	2005-04-25
재·보선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4·30 재·보궐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전력을 투구하는 모습이다. 그 여파로 4월 임시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회의출석률이 현저하게 떨어져 입법 부실화가 우려되는 상황이 되었다. 또, 최근 한나라당은 여당의 내부 문건을 근거로 관권동원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열린우리당은 상투적인 야당의 꼬투리 잡기로 치부하고 있다. 특히, 경북 영천이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면서 선거 열기는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재·보궐선거 열기에 대해 마뜩찮게 느끼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국의 선거정치에 도덕 의식이 결여됐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재·보궐선거가 지난 4·15총선의 재선거인 한에 있어서는 여든 야든 공히 통렬한 반성이 앞서야 하지 않을까? 여야는 이번에 몇 석을 더 추가하느냐에 목을 매달기보다는 옷깃을 여미는 심정으로 선거에 임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정부·여당은 지난해의 4·15총선이 헌정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깨끗한 선거라고 얼마나 강변했던가? 그렇게 깨끗하게 치러졌다면, 이번의 재선거 실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여야는 국회의원 선거를 왜 새로 치러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 다만, 새로운 국회 의석 추가의 기회, 혹은 득표 극대화의 기회로만 치부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선거를 새로 치르게 되는 것은 학교에서 재시험을 치르는 사태나 육상경기에서 선수들이 재출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왜 재시험이나 재출발을 하는 것인가? 일부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했고, 또 일부 선수들이 부정 출발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시험이나 재출발은 어디까지나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임하는 정치권의 여야에는 이른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다. 누가 이기느냐 하는 문제, 혹은 ‘TK철옹성’에 열린우리당이 입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만 있다면, 뻔뻔스러움만 남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때아닌 선거 열기와 호들갑을 보면서 우리는 한국정치의 ‘속물근성’을 자조하게 된다. ‘속물정치’의 근성은 염치가 없어 도대체 잘못한 것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시치미를 떼며 몰염치로 일관하는 이런 모습은 지난 대선 때 불법 선거자금 수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미 입증된 것이기도 하다. 그 당시 여야 간의 쟁점은 오로지 상대당보다 불법자금을 더 많이 받았느냐, 아니면 더 적게 받았느냐 하는 문제에 있었던 것이다. 한국정치의 도덕지수가 높았다면 일단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席藁待罪)하는 모습부터 보였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결국 ‘흙탕물 싸움’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재·보궐선거에서도 치열한 반성의식 없이 단순히 선거공학적 기법만으로 선거를 치르고자 한다면 누가 이기든, 누가 의석을 더 많이 건지든, 한국정치의 ‘속물근성’을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우리 모두에게 불행이 되지 않을까? 정말로 반성하는 마음이 있다면, 선거를 요란스럽게 치르기보다는 조용히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있었던 교황선거가 생각난다. 교황선거에는 요란한 유세도, 상호 비방·중상도 없고 관권동원 시비도 없었다. 종교 선거라 그런 것인가? 아니면 성(聖)과 속(俗)의 차이가 커서 그런 것인가? 하지만 봉사하는 권위의 성격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닐 터이다. 이번 한국의 재·보궐선거가 반성과 수오지심 위에 치러진다면, 교황선거와 같은 분위기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염치를 아는 선거가 되지 않을까? 부디 여야는 호들갑을 떨기에 앞서 겸허하고 자중하는 마음으로 선거에 임할 것을 당부한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5. 4.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