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의혹' 진실을 알고싶다 - 박효종
	2005-04-15
'유전 의혹' 진실을 알고싶다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의혹을 두고 정치권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 문제와 관련해 철도공사사업개발본부가 지난해 8월12일 작성한 ‘신규진출사업 설명회’ 보고서를 공개했다. 특히 한나라당이 이 보고서 문건을 공개하면서 의혹에 여권실세가 다수 개입되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그 의혹의 한 당사자인 이광재 의원은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권의 공방에 대해 국민으로서는 그 정치적 득실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권력형 비리냐 단순 사기사건에 불과하냐는 점도 궁금하고, 왜 철도공사가 자신들의 고유 사업과 무관한 사업에 그처럼 무리하게 개입하여 손실을 초래했는가 하는 점도 의문의 대상이다. 사실 의혹이 불거지면서 청와대도 검찰수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제까지의 사태를 보면 감사원만으로 의혹을 풀어내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관련자들이 “누가누가 진실을 말하나” 하는 ‘진실게임’이 아니라 “누가누가 거짓말을 잘하나” 하는 ‘허위게임’을 벌이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여당의 실세 의원과 현직 차관 그리고 러시아 기업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미국 국적의 핵심 관련자가 조사 직전 해외로 빠져나가는 황당한 일이 벌어져 검찰이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이 의혹사건의 진상 규명은 검찰의 의지에 달린 셈이다. 아울러 국회 차원의 철저한 진상규명 노력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양자는 보완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의혹사건을 규명하고자 하는 정부 여당의 정치의지라고 생각된다. 의혹이 명명백백하게 가려지지 않을 때 그 부담은 정부 여당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의혹을 규명하는 데 미적미적하면 ‘국민의 정부’ 때 발생했던 ‘옷로비 사건’의 재판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옷로비 사건’은 결국 무혐의로 결론이 났지만, 초기의 미온적 태도로 정부와 여당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었던 것이다.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권력비리 의혹은 있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처럼 ‘정치지상사(政治之常事)’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옛날 카이사르가 자신의 아내와 이혼하면서 했다고 전해지는 말, 즉 “카이사르의 아내는 의혹을 받는 것만으로도 자격이 없다”는 말을 상기하고 싶지는 않다. 공직자나 권력자가 의혹을 받는 것은 오늘날 투명성을 지향하는 민주사회에서 불가피한 운명이기도 하다. 사회가 깨끗해지려면 항상 조그만 문제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그런 의문을 푸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잘해보겠다는 선의의 과욕이 화를 부르는가 하면, 권력이 노골적으로 개입된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사건은 정말 당사자가 억울한데도 정치적 싸움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권력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권력에의 의지’보다는 ‘진실에의 의지’를 불태우는 열정이 더욱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의혹이 불거졌다는 점이 아니라, 그 의혹을 정부 여당이 어떤 자세로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 여당의 태도는 우선 문제의 의혹을 푸는 데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어느 정도의 도덕성을 잣대로 삼는가 하는 문제를 가늠할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정부가 “중이 제 머리를 깎을 수 없다”는 속담이 틀릴 수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정부 여당이 이번에 하는 태도에 따라 “중도 제 머리를 깎을 수 있다”는 새로운 속담이 나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결정될 것이다. 정부 여당이 나서서 비상한 의지로 허위와 진실을 가려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국민윤리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5. 4. 1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