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쿼터, 정부입장 분명히 하라 - 조희문
	2005-04-06
스크린쿼터, 정부입장 분명히 하라 스크린 쿼터제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는 한심한 지경을 넘어 무력해 보이기까지 한다. 지난 1999년부터 본격적인 논란이 제기된 이래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는 ‘현행 수준 유지’를 녹음기처럼 반복했고, 외교통상부는 축소 또는 점진적 폐지를 주장했다. 현 정부의 태도는 더욱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사수’를 외쳤지만 지난해 6월에는 ‘스크린쿼터의 축소를 검토할 시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문화관광부의 기존 입장에 중요한 변화가 있음을 밝혔다. 그보다 앞서서는 청와대 정책실장 직에 있던 이가 ‘스크린 쿼터 축소 불가피’를 언급한 적이 있고, 노무현 대통령도 ‘한국영화 잘되고 있지 않으냐, 스크린쿼터가 없어도 되지 않느냐’는 말로 운을 떼는 경우가 두어번 있었다. 그 사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스크린쿼터제가 불공정 거래행위에 해당하는 제도이므로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서비스 분야의 43개 규제 개선 대상에 포함시키고 문화부가 자체적으로 개선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못을 박고 나서기까지 했다. 그러는 사이 영화계에서는 스크린 쿼터를 기필코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강경파들의 시위가 간헐적으로 이어졌고, 폐지 또는 점진적으로 축소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스크린 쿼터제 논란의 중요한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선결 과제로 이 제도의 폐지 또는 대폭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나 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이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결국 미국 정부와 그 대리인들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려면 스크린 쿼터에 대한 납득할 만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압박했고, 우리 정부는 ‘현행 유지’와 ‘조정’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영화계의 강경론자들은, 어떤 형태로라도 제도를 건드리는 기색이 보이면 사생결단하듯 나섰고 그럴 때마다 정부는 슬그머니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며 소강상태를 만들었다. 강경론자들은 한국영화의 발전은 스크린 쿼터제 덕분이며, 이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려는 움직임은 문화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무지하고 폭력적인 행위로 몰아붙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대략 40% 정도에 이를 때까지는 존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신기루처럼 그것이 실현되자 ‘안정적인 40%’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말을 바꿨다. 그 수준을 훌쩍 넘어 외국영화를 제치며 50%를 오르내리는 상황이 몇 년 째 계속되자 ‘문화적 종(種)다양성 보호’니 ‘문화주권 수호’를 새로운 명분으로 내세웠다. 인위적 보호가 한국영화의 자생력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거나 영화시장의 다양성을 위협하며 관객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채 눈치를 보고 있는 사이, 스크린쿼터제는 지원제도로서의 효용 여부를 벗어나 문화적 선동의 수단으로 변질해버린 것이다. 이런 와중에 또 다시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정부는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지난해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와 스크린 쿼터를 개선하기로 합의했다’고까지 덧붙였다. 강철규 공정거래 위원장이 외신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니 정부의 책임 있는 발표라고 믿어도 좋은 수준이다. 문화부 측도 ‘축소조정을 위해 외교통상부, 재정경제부 등과 조율하고 있다’며 공정거래 위원장의 발언을 뒷받침하고 있다. 조만간 가시적인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태도들이다. 스크린 쿼터제의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면 분명하게 그렇게 하겠다고 하든지, 여러모로 따져 폐지나 축소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면 당당하게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정부가 엉거주춤할 수록 소모적인 논쟁만 가중시키며 ‘스크린 쿼터 업자’들만 양산할 뿐이다. 조희문 (상명대 교수·영화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4. 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