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직인사 더 깊게 널리 구해야 - 류동길
	2005-04-06
고위직인사 더 깊게 널리 구해야 올 들어 4명의 장관급이 물러났다. 정책실패가 아니라 모두 부동산과 자녀 관련 의혹이 문제가 됐다. 이번에는 도덕성을 유독 앞세웠던 국회의원 두 사람이 위장전입으로 땅을 사들여 차익을 남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본인들은 “투기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산 땅을 상속받은 재산이라고 신고했다는 것도 알려졌다. 아직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장관들에게 적용된 도덕성 기준이 국회의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인지는 두고볼 일이다. 20, 30년전 돈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땅이든 아파트든 부동산투자로 재산을 불리려고 했고 그건 예사로운 일이었다.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과거의 일로 곤혹스러운 일을 당하는 사람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는 데에 무리가 따르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과거 잘못을 두둔할 수는 없다. 문제에 연루된 고위공직자는 사실을 제대로 해명하거나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 물러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책임을 지겠다는 말도 아낀다. 그래서 국민들은 울분을 삭이기 어렵고 때로는 허탈해하는 것이다. 1972년에 일어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민주당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했던 사실 자체보다도 그걸 감추려고 거짓말한 것을 당시 미국여론은 용서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게 인간 본성일지 모른다. 로버트 스티븐슨은 ‘지킬박사와 하이드’에서 인간은 선한 면과 악한 면을 가지고 있다는 걸 그려냈다. 2차대전 후 유대인 학살의 총지휘자였던 아이히만의 범죄사실을 증언한 사람은 가스실에서 살아남은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법정에서 아이히만을 본 순간 졸도했다가 다시 깨어나서 한 말은 “악마의 얼굴이 저렇게 평범할 줄이야”라는 것이었다. 악한 자는 소설에만 있는 것도,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위대한 사상과 업적을 쌓은 사람들에게도 양면성은 있었던 것 같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을 연구했던 카를 마르크스는 그의 집에서 45년 간 일했던 하녀에게는 한 푼의 임금도 지불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해놓고 그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책임도 회피했다. 톨스토이는 사창가를 드나들면서 여성과의 교제가 사회악이라고 주장했는가 하면, 헤밍웨이는 습관적 거짓말쟁이였다. 폴 존슨이 ‘지식인의 두 얼굴’이라는 책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이런 양면성이 고위직 인사들이라고 해서 왜 없겠는가. 하지만 그들에게는 보통 사람보다 높은 도덕적 책무가 부여돼 있다. 그것도 모르고 비리를 저지르고 재산 불리는 일을 하면서 애국자, 도덕군자처럼 행세하는 걸 참을 수는 없다. 이런 저런 의혹에 연루되는 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공직사퇴로 불법행위를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상이 밝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혹은 의혹대로 남거나 증폭된다. 이헌재 부총리 사퇴문제에 언급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여론재판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개탄했다. 사실관계를 먼저 밝히지 않고 여론재판을 개탄하면서 여론에 밀려 장관직을 그만두게 한 것은 옳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총리후보 30명 이상을 검증했는데 문제가 전혀 없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고 밝힌 바 있다. 털어 보니 거의 모두 먼지가 나더라는 이야기다. 공직자에게 높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옳다. 그렇다고 해서 예컨대 부동산과 아들 군복무관계에 문제가 없는 사람을 무난한 사람이라고 뽑아 나라 일을 맡길 수는 없다. 우리 편 사람 쓰겠다는 좁은 생각 거두고 능력을 가진 인사를 널리 구해야 나라가 산다.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4. 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