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노선 바뀌어야 한다 - 김태기
	2005-02-22
노동운동 노선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위기에 봉착했다. 노동계 내부도 현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은 일반적인 시각과 거리가 있는 것같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일자리가 중국 등으로 옮겨간다고 걱정하고 있다. 또한 기술 변화에 따라 지금까지 두 사람이 하던 일도 한 사람이 거뜬히 해내는 세상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가 이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듣기 힘들고, 구조조정에 반대해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자주 접하게 된다. 노동운동의 위기는 자기모순에서 비롯되었다. 대기업·정규직 근로자가 노동운동을 키워온 것은 사실이지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서 반사적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최근의 기아차노조 채용 비리나 민주노총 폭력사태 등은 우발적 사건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노동운동의 환경이 바뀌면서 근로계층 내부의 갈등은 고조돼 왔는데, 노동계는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지 못했다. 노동계의 최근 사건들은,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비정상적으로 달성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주장이 맞아도 그것이 아집과 독선이라면 어떠한 결과를 유발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노동운동이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에는 성공했지만 전체 근로자에게는 상처를 남겼다. 소수의 대기업 노조 근로자는 상위 소득계층에 속하게 됐고 고용 안정을 누리게 된 반면, 나머지 많은 근로자들은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노동운동의 본산인 제조업을 보자. 500인 이상 사업체는 1988년 758개에서 2002년 371개로 줄었고, 상용종업원 수도 110만명에서 53만명으로 절반 이상이 감소했다. 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는 커졌다. 10~29인과 500인 이상 사업체의 임금을 비교하면 그 격차는 1980년 87로 13포인트 간극이 있었으나 1990년에는 67로 33포인트 벌어졌다. 2003년에는 53으로 간극이 47포인트에 달하면서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반 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투쟁적 조합주의가 아니라 실용적 통합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운동은 대기업 노조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을 극복해야 할 현안부터 고용의 양극화 문제, 중소기업의 몰락 문제 등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대기업 노조의 문제는 노동계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고, 비정규직 문제나 중소기업 문제는 정부와 기업에 대한 투쟁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맹목적인 투쟁은 대기업 노조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게 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계 지도자가 시대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노동 문제를 공업화 시대처럼 자본과의 양자 대결 구도로 단순화하거나, 민주화운동 시대처럼 정부와의 대립구도를 부각해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해오듯이 시장과 기술의 변화를 도식적으로 비판하고, 문제의 해결 방안을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노동운동은 지금보다 더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 있다. 노동계 지도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선진국의 노동운동가는 자국의 일자리가 없어지면 그 원인을 찾기 위해서 경쟁국가를 방문하며, 신기술의 도입 때문에 근로자들이 실직의 위기에 처한다면 효과적인 재교육 방안이나 생활안정 방안을 찾기 위해서 전문가를 만나러 다닌다. 이들은 경험을 통해서 시장과 기술 변화의 수용을 거부하고 정치적 투쟁을 일삼는 노동운동은 예외 없이 고립되거나 쇠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노동계 지도자의 용단이 필요한 때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2. 22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