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투쟁에 주저앉는 국책사업 - 류동길
	2005-02-17
극한투쟁에 주저앉는 국책사업 지율 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으로 천성산 터널공사가 사실상 중단됐다. 새만금 사업도 발목이 잡혀 있다. 엄청난 돈이 투입돼 추진중인 대형 국책사업이 이렇게 갈팡질팡하고 있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죽을 각오로 하는 단식은 대단한 결단이고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식의 명분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터널을 뚫으면 꼬리치레도롱뇽이 죽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막자는 게 단식투쟁의 명분이었다. 터널공사는 착공 후 중단, 재개를 거듭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노선변경을 검토했지만 환경침해 최소화를 위해 기존 노선이 최적이라는 결론도 내려졌다. 하지만 전문가의 분석에도, 법원의 공사 재개 결정에도 승복하지 않고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공사 중단을 결정한 정부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공사 중단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켰고, 정부는 초라한 모습만 보였다.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정부가 개인의 단식투쟁에 굴복했다는 점이다. 지율 스님은 자신의 신념과 판단에 따라 행동했다. 그걸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문제는 정부에 있다. 정부는 스스로 결정해서 추진하고 있는 국책사업을 놓고 개인과 무슨 약속을 하고 합의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런 정부를 믿고 따르고 세금을 내는 국민은 도롱뇽보다 못한 존재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단식으로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게 정부 당국의 말이지만 이건 무소신·무책임한 말이다. 앞으로 또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어떤 걸 반대하거나 주장하면 정부는 들어준다는 신호가 아닌가? 둘째, 공사 중단으로 엄청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게 간과되고 있다. 천성산 터널공사는 작년에도 9개월이 중단돼 이미 1조9000여억원의 손실이 생겼다. 공사 중단으로 하루 7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한다. 새만금사업도 방조제 공사 전체 33㎞ 구간 가운데 92%의 공정을 끝내 불과 2.7㎞만 남겨두고 있다. 그런 공사들이 중단돼 낭비되는 예산은 국민이 낸 혈세가 아닌가? 셋째, 환경 보호는 선(善)이고 개발은 악(惡)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개발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환경 보전이 절대 선은 아니다. 환경운동가들의 노력을 결코 폄훼할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한을 국민 누구도 위임하지 않았다. 천성산 터널 대신 다른 길을 낸다고 하자. 그 경우 도롱뇽이 아닌 다른 동물은 피해가 없으며 환경은 보존되는가? 집 한 채를 지어도 환경은 파괴된다. 환경만 생각하면 미개 상태로 살아야 하는 게 순리다. 인류가 생존·번영해 온 것은 어느 정도의 환경 파괴를 감수한 결과다. 환경 피해 정도와 국가 발전과 국민 편의를 저울질하지 않고 환경만 내세울 수는 없다. 집도 짓지 말고 도로도 자동차도 전기도 없애고 옛날 옛적 원시생활로 돌아가서 살 각오가 있다면 모를까. 넷째, 이번 사태는 정치논리로 문제를 접근하면 갈등이 초래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천성산 터널공사가 꼬인 것은 지난 대선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가 터널공사 백지화를 포함한 노선 전면 재검토를 공약한 데서 비롯됐다. 국책사업을 정치적 표 계산으로 접근하면 갈등을 일으키고 예산은 낭비되게 돼 있다. 행정수도 이전도 대선과정에서 특정지역 표를 겨냥해 불쑥 터져 나온 공약이었고 그래서 계속 갈등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은 공약이 앞으로의 대선과정에서 남발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추진중인 국책사업이 중단되고 막대한 혈세가 낭비돼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작은 부정과 비리는 적발해서 처벌하는데, 국민의 혈세가 엄청나게 낭비되는 건 모른 체한다. 작은 도둑은 잡고 큰 도둑은 놓아 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세금은 내야 하는 국민만 억울한 것이다.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2. 1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