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北核 낙관론 위험하다 - 남주홍
	2005-02-17
어설픈 北核 낙관론 위험하다 김정일정권이 지금 최후의 도박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것도 6자회담 당사자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를 상대로 그야말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한판을 걸고 있다. 따라서 만약 북한이 이 게임에서 승부수를 얻으면 북한 체제의 생존력을 강화시키고 정권 안정도 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실패할 경우에는 스스로 최악의 곤경에 빠질 수 있다. 현재 상황은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처럼 대단히 심각한 국면이다. 이는 북핵 문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고도의 정치외교 및 군사적 폭발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지난 94년 1차 핵위기 때와 크게 다른 점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당시 김일성 주석의 핵카드 목적은 핵개발 위협을 통해 궁극적으로 대미관계를 개선하고 고립으로부터 벗어나 자생력을 회복하는 데 있었으며, 그래서 제네바합의문이라는 절충안이 가능했다. 이에 비해 이번 김정일이 주도한 2차 핵위기는 최근의 핵무장 선언에서 보듯이 애초부터 핵 보유의 기정사실화를 전제로 일종의 제로섬(zero-sum) 게임식 대결 성격을 띠고 있다. 그래서 김정일정권과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라는, 사실상 협상이 불가능한 요구를 들고 6자회담에 나온 것이다. 이러니 회담이 오래 지속될 리가 없다. 즉, 이번의 극단적인 대치 국면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란 뜻이다. 따지고 보면, 북한 측의 ‘선 보상, 후 동결’ 주장이나 미국측의 ‘선 폐기, 후 보상’안 그리고 우리측의 동시 병행론 모두 지극히 전술적 흥정에 불과하다. 전략적으로 북한은 과거 파키스탄처럼 핵 개발 의지의 공개가 결국 핵무장을 불가피하게 만든 코스를 가고 있고, 기술적으로는 핵실험 없이도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이스라엘 모델을 택하고 있다. 그래서 남아프리카공화국 같이 핵무장을 했다가 국제적 압력으로 결국 폐기하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보상을 약속받고 핵개발 계획 자체를 포기한 리비아방식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이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보유 선언을 애써 무시하고 ‘북핵 불용’을 다짐한다고 해서 풀릴 문제는 아니다. 북한은 이미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측의 이번 선언을 단순히 협상용이라고 하지만 북핵 개발 실태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가? 북한 지도부 동향에 관한 전략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핵 문제를 절체절명의 군사안보 문제가 아닌, 오직 외교협상 문제로만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계속 자충수를 두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LA 발언이나 외교·통일 부처의 6자회담 낙관론, 그리고 국방부 및 국정원의 북핵 무기화 능력 회의론(懷疑論) 등은 모두 정치·군사적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그것도 매우 위험한 요소가 내포된 논리들이다. 도대체, 북핵이 ‘자위적 수단’이라면 한미연합군의 대북 전쟁억제력 명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6자회담 외엔 대안이 없다면 회담이 지연되거나 장기화되어 결국 북핵 보유가 기정 사실화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북핵 프로그램에 관한 아무런 검증된 정보없이 어떻게 실전화 능력을 일방적으로 부인할 수 있는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모든 것이 북한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가면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은 불가피하고 그럴 경우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도는 더해질 것이 자명하다. 이는 우리가 막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의 딜레마는, 이를 막으려고 할 경우 한·미 안보동맹이 위험해지고, 막지 않으면 북한 체제가 위험에 빠진다는 점에 있다. 최악의 경우, 어쩌면 북한 정권이나 체제가 핵 문제로 인해 종국에 그야말로 ‘핵분열’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지금 공은 북측에 가 있지 미국 측에 있는 게 아니다. 위기는 애당초 북한이 초래한 것이다. 미국의 강경책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우리 정부는 우선 이 점을 분명히하고 한·미 공조에 임해야 한다. 어설픈 ‘중재자’역 자임은 오직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가능한 모든 사태를 상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이대로는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남주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2. 1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