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펑펑쓰던 '정치의 추억' - 박효종
	2005-02-16
돈 펑펑쓰던 '정치의 추억' 우리는 정말로 깨끗한 정치를 원하고 있는가, 아니면 말로만 깨끗한 정치를 부르짖고 있는가? 진짜 의문은 이것이다. 시민들은 깨끗한 정치를 원하고 있는데, 정치인들만이 검은돈을 밝히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시민들이 자꾸 손을 벌리고 돈을 달라고 해서 정치인들이 ‘억지춘향’처럼 돈을 밝히게 되었는가? 이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기 어려워 차라리 순환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물론 이 순환은 ‘선순환’은 아니고 ‘악순환’일 터이다. 그런데 요즈음 열린우리당에서 ‘정치개혁 5대 목표와 12대 개혁방안’이란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시민들은 ‘깨끗한 정치’를 원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더러운 정치’를 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지는 것 같다. 열린우리당은 정치자금 모금의 상한선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모금 방법은 현실화하겠다는 방침을 정함으로써 현행 정치자금법을 고칠 모양이다. 현행 법에서는 정치자금 모금 집회를 금지하고 법인과 단체의 기부도 금지하고 있는데, 이것을 풀어 정치인의 후원회 행사를 부활시키고 법인과 단체의 기부행위도 가능토록 할 예정이란다. 또한, 광역·기초단체의 장과 의원 및 예비후보자의 정치자금 모금을 허용할 방침인데, 이것은 지난 4·15총선전 정치관계법 개정 전에도 없었던 신설 조항이 되는 셈이다. 물론 명분이 없을 리 없다. 현행 정치자금법이 현실을 외면한 채 규제 일변도로만 돼 있어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에 지장을 주고 신인들의 정치권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 왔던 말이 아닐 수 없다. 명분과 달리 정작 정치자금법을 개정하려는 여당의 의도는 무엇일까? 어떤 향수나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살인의 추억’처럼, 기업에서 돈을 뜯어내어 펑펑 쓰던 때의 추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기야 왜 놀던 가락이 없겠는가. 마치 돈에 중독이 된 사람처럼, 이 기업, 저 기업에 손을 벌리고 돈을 모아 쓰고 싶은 대로 쓰던 버릇을 법으로 못하게 하니, ‘금단현상’이 발생한 것일까? 작년 총선은 깨끗하게 치러진 선거였다. 필자도 한 기업인을 만나본 적이 있는데, 그의 말로는 지난 총선에서는 정말로 여야 정치인이 손을 벌리지 않더라면서 희한해했다. 또한, 이것이 비교적 우리가 체감했던 느낌일 것이다. 이러한 느낌에 공감할 수 있다면, 4·15 총선을 ‘깨끗한 정치의 원년’이라고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일반 시민들과 기업은 현행 정치자금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고 있는데 왜 정치인들은 부정적으로 평가를 할까? 역시 정치인은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별종’이기 때문일까? 깨끗한 정치는 저절로 정착되는 것이 아니다. 산고와 같은 진통도 참고 금단현상도 극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돈중독’을 끊는 일은 ‘술중독’이나 ‘마약중독’을 퇴치할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한국 정치는 얼마나 돈을 밝히고 돈에 절어 왔는가? 고비용 정치야말로 3류정치의 원흉이다. 획기적인 정치자금법으로 총선을 치러 모처럼 단군 이래로 깨끗한 풍토가 조성됐는데, 왜 그것을 허물고 되돌리려는가. 작년과 재작년 기업과 정치인 모두가 검은돈의 볼모가 되어 ‘정치쓰나미’가 발생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기업인들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아슬아슬한 모습이나 많은 정치인이 돈 때문에 쇠고랑을 찬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정치자금법을 과잉 규제법이라 하여 풀려고 한다면, 시대 정신을 읽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시대 정신을 읽을 줄 아는 정치인이라면, ‘돈에 대한 추억’을 말끔히 잊어버리고 ‘깨끗한 정치에 대한 추억’을 만들고자 진력해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5. 2. 1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