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경제' 말보다 실천이다 - 안재욱
	2005-01-14
'선진경제' 말보다 실천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1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살리기’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계속적인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3.5%에 달하고 청년실업률이 7.9%나 되는 심각한 상황에서 ‘경제살리기’를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매우 다행스럽고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노 대통령은 경기회복을 위해 상반기에 재정을 조기 투입하고 하반기에는 종합투자계획을 실행하겠다고 했다. 또,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원론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경제가 극도로 침체돼 있을 경우 정부의 재정 투입은 일시적으로 경기 부양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근본적으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처방이 될 수 없다.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민간부문의 경제 활동이 증가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은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드러나 있지 않아 유감스럽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우선 취해야 할 조치는 규제 완화다. 지금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명분 아래 가해지는 출자총액제한, 금융계열사 의결권제한 등 수많은 규제가 대기업에 가해지고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신규기업 등록 절차가 2개뿐이며, 이틀이면 창업이 가능한 호주에 비해 한국에서는 신규기업 등록에 13가지 절차가 요구되고, 창업하는 데 36일이 걸린다. 프레이저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활동 규제에서 한국은 120여개국 가운데 50위권 밖에 있는, 규제가 심한 나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의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다.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불법적인 노동운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법과 원칙을 지켜 그러한 활동이 만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그 동안 한국을 떠나갔던 외국 기업들이 다시 돌아와 일자리가 늘고 실업이 감소할 것이며 자연히 경제가 회복될 것이다. 또한, 민간부문의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감세정책도 필요하다. 한국의 소득세와 법인세는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는 물론 미국보다 높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의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고, 국내 기업이 외국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어렵다. 내외국인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더불어 소득세 및 법인세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낮추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많아져 소비가 늘 것이고, 기업은 투자를 늘릴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제살리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재산권 안정이다. 재산권이 불안정하면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유인이 줄어든다. 기업의 활동이 감소하고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져 국민경제가 쇠퇴하게 된다. 사실 최근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침체돼 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정부정책이 재산권을 불안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상속·증여세 포괄주의, 토지 공개념, 종합부동산세, 사립학교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노조의 경영 참여 등은 모두 재산권을 부정하는 것들이었다. 미래를 계획하고 장기적인 결과를 고려하여 투자하고 역동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재산권 안정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가 불안정하고 침체돼 온 또 다른 원인은 정책의 비일관성이다. 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한다면서도 정작 내놓는 정책은 그와 반대되는 정책이었고, 노동시장을 안정시키겠다면서 정작 실천에 가서는 그렇지 못한 터였다. 따라서 ‘경제살리기’에 있어서 정부의 정책 일관성 역시 매우 중요하다. 만약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이렇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천명하는데도 정부가 실천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며 ‘경제는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1. 1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