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민족공조' 강조 뭘 노리나 - 남주홍
	2005-01-07
北 '민족공조' 강조 뭘 노리나 북한 당국이 신년사에서 남한과의 이른바 ‘민족공조’의 중요성을 유달리 강조하고 나선 것이 왠지 꺼림칙하다. 먹고 사는 문제 해결로 체제 결속을 다지자는 의례적 주장이나 농업생산력 강화를 강조하는 실용적 변신 노력보다도 선군사상을 앞세우며 남쪽을 향해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를 선동하는 태도가 금년이 북핵 문제 해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 저의가 심상치 않다. 이는 북한 당국이 지난해 봄에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김정일 전시세칙’이라는 극비문건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조선 로동당중앙군사위원회 지시’ 문건에 따르면, 북한 지도부는 이미 핵문제의 장기화에 따른 ‘조선반도 위기’를 기정 사실로 간주, 공격과 방어 모든 부문에서 전시세칙을 철저히 준비하고 도상훈련(CPX)까지 마친 것으로 돼 있다. 심지어 전략정보와 첩보 활동에 관한 대남공작 강화까지 총력동원 체제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아 북한 당국은 남북대화나 교류협력과 관계없이 최악의 경우를 구체적 시나리오로 미리 대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의 태도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북한의 핵개발은 자위적 측면에서 일리가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미국의 대북정책이 더 위험하다” “북한 붕괴는 없다” “국가보안법은 안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리고 “일부 친북 사이트에 대한 접속 차단 풀겠다”는 한가한 발언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정책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게 한다. 쉽게 말해서, 북측은 핵무장을 전제로 다가오는 북·미 대치 상황을 예견하고 치밀한 전시계획을 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을 방패삼는 위의 3대공조 통일전선전략을 연초부터 천명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이른바 우리의 주도적 중재 역할로 북핵 문제가 조만간 풀릴 것을 전제로 정상회담과 특사 교환을 추진하기 위한 각종 일방적 대북 제스처를 쓰고 있다.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이고 전략적인지는 차차 증명이 되겠지만, 적어도 북한 지도부는 남한의 대북정책을 나름대로 낙관하고, 핵협상에 관한 기존의 3대 대미정책 원칙을 일관되게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 원칙이란, 북한의 핵포기 대가로 미국 주도의 경제적 보상과 북체제에 대한 정치·군사적 안전보장, 그리고 대북 제재 해제 등 이른바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말한다. 공교롭게도 이 원칙들은 김대중정부와 이 정부가 그간 직간접적인 형태로 미국측에 ‘중재적’으로 강력히 요청했던 내용들이다. 따라서 이대로 가면 설사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성패의 책임 부담이 오히려 미국 측에 떠넘겨지는 황당한 일이 생기고, 결국 이로 인해 한·미 간에 누구 말대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즉,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 북측이 남북관계 개선의 명분으로 ‘민족공조’를 요구하고 나올 경우 한·미 공조체제가 심각한 고비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북한 정권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니 너무 앞날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지금 김정일정권은 치유 불능의 경제난과 갈수록 통제키 어려운 탈북 행렬, 그리고 후계체제 공식화라는 3각파도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흘러나온 북한 고위간부의 증언에 따르면 2002년 7월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완전 실패로 끝나 오히려 인민 경제가 파탄에 빠졌고, 핵카드는 개성공단과 경의선 그리고 금강산관광과 더불어 생존을 위한 최후의 도박으로 내부적으로도 극도의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고 한다.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2005년은 북한 정권창립 60주년으로, 그들 표현대로 꺾어지는 중대 전환기이다. 김정일 후계체제 출범 10주년이기도 한 올해가 과연 북핵 문제 돌파구가 열려 남과 북이 모두 사는 ‘윈-윈’의 위대한 한민족 해가 될지, 아니면 이 문제의 교착상태로 6·25 이래 최대 위기가 될지, 모든 것은 북한 지도부의 태도 변화 여부에 달려 있다. 냉철한 자세로 이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거품을 걷어내고 다가오는 위기 관리력에 철저히 내실을 기할 때이다. 남주홍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1. 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