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 아니라 수능을 바꿔야 - 권대봉
	2005-01-05
장관이 아니라 수능을 바꿔야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 대통령은 교육부장관만은 대통령 임기 5년을 함께하고 싶다고 했지만, 벌써 세번째 장관이다. 1년 전에도 수능 문제로 교육부장관이 바뀌었는데, 이번에도 수능시험 부정 및 변별력 상실이라는 이유로 교체됐다. 임기가 없는 임명직 교육부장관이 임기가 보장된 선출직 교육감에게 수능 부정방지를 사전에 촉구했지만 허사였다. 시험 현장의 감독관들이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하는 바람에 많은 학생이 부정을 저질렀고 결국 교육부장관이 교체되는 이유가 됐다. 매년 수능 문제로 연례행사처럼 장관이 경질돼도 좋은가? 장관을 교체해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면 문제가 되는 수능을 수술하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수능을 원래의 목적대로 대학수학능력을 측정하는 도구로만 사용했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적다. 정부가 전국의 모든 대학을 대신해서 수능을 선발고사로 사용한 데서 문제가 비롯됐다. 수능을 처음 고안할 당시의 원안은 대학에서 수학하는 데 필요한 기초공통과목인 언어, 수리, 외국어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른 과목을 담당한 교수들의 과목 이기주의로 인해 여타 과목들이 추가됐고, 선택과목이 많은 7차 교육과정을 적용하자 선택과목의 난이도 조절이 실패했으며 법정 소송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학입시의 책임을 대학이 아닌 정부가 짊어지고 매년 수능 때문에 장관을 교체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수능 과목수를 대폭 축소하여 자격시험화하고 대학에 선발 권한과 책임을 맡기는 것이 올바른 입시정책이다. 현재 고등학교 졸업생 수보다 대학 입학정원이 많기 때문에 수능시험을 자격화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수학능력이 없는 사람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하므로, 굳이 대학 정원과 수능 자격시험 합격자 수를 맞출 필요는 없다. 수능을 자격시험으로 바꾸면 고등학교 교육에 대한 학력 책무성을 검증할 수 있으므로, 대학 정원에 관계없이 대학수학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엄격한 자격시험으로서 사회에 통용될 수 있을 것이다. 수능을 자격시험화하고 대학에 선발권을 일임한다면 적어도 대학입시 문제 때문에 장관이 교체되는 일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잦은 장관 교체로 교육을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는커녕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신임 교육부장관은 전임 장관이 발표만 하고 시행하지 못한 교육의 수월성 추구 정책을 교육의 형평성 추구 정책과 더불어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추진해줄 것을 바란다. 뿐만 아니라 한 해에 6만명 이상의 학생이 학교를 이탈하고 있는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소수의 대안학교가 탈학교 학생들을 수용하고 있지만 태부족이다. 학생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학교가 학생에게 적응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중·고생들의 성적이 국제성취도평가에서 최상위권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만족도가 왜 최하위권인지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공부하는 한국 고3학생의 하루가 미국의 ‘믿거나 말거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방영될 정도로 한국 학생들이 혹사당하고 있고, 학부모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사교육비를 부담하고 있는 현실도 타파해야 할 것이다. 교육 문제로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의 균형 발전을 위해 지방자치와 교육자치를 연계하는 지역 인적자원 개발 정책은 물론, 대학을 졸업한 청년실업자들이 해마다 누적되고 있는 문제를 국가 인적자원 개발 차원에서 해결할 방안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고 교육을 통해 국가의 미래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정권이 바뀌어도 임기가 보장되는 검찰총장처럼 교육부장관의 임기가 일정 기간 보장될 필요가 있다. 교육부장관의 임기가 보장되면 장기적 관점에서 교육정책을 집행할 수 있고 교육감을 제대로 지휘 통솔할 수 있을 것이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대학원장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5. 1. 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