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화두는 '和而不同'을 - 박효종
	2005-01-04
올 화두는 '和而不同'을 오늘이 어제의 연속인 것처럼 새해도 지난해에 이어지는 것이지만 새해에는 새로운 태양이 뜬다. 이것이야말로 올해가 지난해와 차별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지난해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사자성어는 ‘당동벌이(黨同伐異)’였다. 이 ‘당동벌이’가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우리가 지난해 한해 동안 피투성이로 살아온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실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녹음기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음미하며 또 사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듯이 말이다. 물론 패싸움을 가장 현저하게 벌인 곳은 정치판이다. 여당과 야당은 농성과 독한 말로 맞서지 않았던가. 그러나 ‘당동벌이’는 정치판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사회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무색케 할 만큼 이리저리 찢기면서 수없이 대립했고 두 편으로 나뉘어 패싸움을 벌였다. 두 편으로 나누어 하는 패싸움처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초등학교 운동회가 청백으로, 축구도 두 팀으로 나누어 겨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 팀끼리 다투는 축구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사회가 두 팀으로 나뉘어 싸우는 경우는 최악이 아닐 수 없다. 두 팀 간의 싸움은 한 팀의 불행이 상대방에게 행복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 되기 때문이다. 빈자와 부자, 진보와 보수, 강남과 비강남권, 서울과 지방, 회사경영진과 노조가 싸울 때 양자가 모두 이기는 ‘윈윈게임’이 가능할까. 사실 사회의 기둥뿌리와 같은 집단이 두 편으로 나뉘어 싸운다는 것은 ‘하늘과 땅’이 싸우고 ‘음과 양’이 싸우는 것처럼 황당한 일이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숱하게 그런 일들이 벌어졌다.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북한 핵문제 등 모든 문제에서 사람들은 두 편으로 갈라져 토론장과 집회장소, 또 세미나모임에서 싸웠다. 다원주의사회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한편에서 갈리더라도 다른 데서는 만나고,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다음에는 화끈하게 화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싸우고 또 싸우며 끝없이 싸웠던 것이다. 지난해에는 패싸움에 ‘올인’했다면 올해는 ‘화이부동(和而不同)’에 ‘올인’할 차례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대방의 얼굴이 나하고 다르다고 타박하는 사람이 있을까. 성격이 느린 사람은 빠른 사람하고 살아야 재미있고, 외성적인 사람은 내성적인 사람과 함께 살아야 조화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동물 간의 경주도 토끼와 거북이하고 했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거북이끼리의 경주, 토끼끼리의 경주에 자기 돈 내고 구경갈 동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인간도 생각과 성격이 다르고 또 취미가 다르기 때문에 어울려 산다. 한류열풍이 중국 동남아를 거쳐 일본을 뒤덮고 세계를 넘보는 것도 그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싸우는 것이 한국의 진보와 보수며, 386세대와 5060세대다. 그동안 너무나 ‘동이불화(同而不和)’에 익숙해 왔기 때문인가. ‘내’가 남하고 다르면서 그 다름이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역할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역할의 불공정한 분담 때문에 일어나는 가정불화를 최소화하려면 엄마가 아빠의 역할을 하고 아빠가 엄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상책이다. 남자가 살림을 책임지고 여자는 돈을 벌어오는 방식말이다. 또 여성주의자들이 성매매금지법 폐지를 주장하고 유학자들이 호주제 폐지를 소리높여 외치면 어떨까. 마찬가지로 새해부터 보수주의자들이 입만 열면 개혁과 혁신의 중요성을 말하고 진보주의자들은 안보와 국방을 말하면 어떨까. 이제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의 목소리를 내고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주의자의 옷을 입어 보자. 또 386세대는 5060세대처럼 말하고 5060세대는 386세대처럼 행동해 보자. 이렇게 역할이 바꾸어지면 한국사회는 무질서한 뒤죽박죽의 사회가 될까. 보수는 보수답지 못하고 진보는 진보답지 못해질까. 오히려 보혁은 서로 다르면서도 그 차이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무질서’가 될 것이다. 부디 ‘화이부동’이 을유년의 사자성어가 되기를 소망한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국민윤리교육학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5. 1. 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