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과 재산권 - 제성호
	2004-12-24
헌법과 재산권 다사다난했던 2004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금년 한 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됐던 단어 중 하나는 아마도 헌법일 것이다. 대통령 탄핵 소추사건,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등으로 헌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여야 간에 첨예한 대치 정국을 만들어내고 있는 소위 4대 쟁점 법안도 자유민주체제의 유지(국가안보), 언론 표현의 자유,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 자유경쟁 등 국가 이념 및 헌법적 가치와 직결돼 있는 것들이다. 이 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한 중요한 헌법적 기초이면서도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게 바로 재산권(물질적 인권) 보장문제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1가구 3주택 보유 제한, 종합부동산세 도입, 재건축 이익환수제, 상속시 포괄주의 적용, 사립학교 법인의 운영권 제한, 주식회사의 출자총액제한 등은 모두 재산권 보장의 근간을 흔드는 것들로 작금 상당수 국민들이 여기에 반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조치들이 ‘개혁’이란 이름하에 집권 세력의 일방적인 결단에 의해 강행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근자에는 건강보험료 인상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건보료는 월 수입에 따라 최저 1만1780원에서 최고 213만원까지 개인이 부담하게 돼 있다. 일본과 독일의 경우 상한과 하한의 격차가 11배, 대만은 6배에 불과하나, 우리나라는 무려 180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앞으로 정부가 법령을 개정해 최고치를 월 1000만원(연 1억2000만원) 정도로 증액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최고 부담액은 최저 액수의 무려 850배가 된다. 건강보험은 사회보험의 일종으로 공동체적 연대의 정신하에 국민건강에 연대 책임을 지우는 제도이다. 소득 재분배 의미도 있다. 따라서 많이 버는 사람이 많이 내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과잉 부과 금지의 원칙이란 내재적 한계가 있다. 지나친 부담의 강제는 헌법에 저촉되는 재산권의 침해에 이른다. 건강보험제도는 탈퇴가 허용되지 않는 강제 가입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개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과다한 건보료는 준조세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헌법 정신에 맞게 조세법률주의가 준용돼야 한다. 만일 대통령령 등 하위 법규로 이를 실시하려 할 경우 위헌성 문제가 제기될 게 분명하다. 정부가 구상하는 부의 재분배 겨냥 조치들이 광범위한 국민적 동의 없이 추진될 경우 새로운 탈법행위들이 등장하게 될 공산이 크다. 또 인적·물적 자본의 유출을 조장할 위험도 있다. 이윤 추구 동기를 저하시키는 조치가 늘어난다면 경제 발전의 동력이 꺼질 수도 있다. 민주주의를 열게 한 프랑스 대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전쟁은 모두 과다한 세금(재산권 침해) 때문에 일어난 것들이었다. 재산은 노동과 시간을 투여한 대가이다. 이 때문에 생명 못지않게 소중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렇기에 헌법 질서 내에서 용인되는 재산권의 합리적 제한과 그 범위를 뛰어넘는 불법·부당한 재산권 침해를 구별하는 엄격한 기준 마련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논의와 대국민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민주적 절차 및 여론 수렴 과정을 생략하고 국가 주도로 개인의 재산권 침해 작업을 추진할 경우, 민초들이라고 말 없이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경제개혁으로 불리는 조치들이 집단적인 (준)조세 저항을 불러일으켜 사회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음을 유념하고 완충적인 장치 마련에 다각적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법학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4. 12. 24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