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혁명'이 가야할 길 - 김진현
	2004-12-08
'한국혁명'이 가야할 길 대한민국은 1945년 이후 독립한 130여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이다. 근대화에 성공한 여러 나라 중의 하나가 아니라 정치의 민주화, 근대경제 성장, 사회문화적 다원화를 동시에 성취한 유일한 민주공화국이다. 나는 이를 ‘한국혁명’이라 부른다. 영국 산업혁명, 프랑스의 1789년 시민혁명, 대중사회화의 미국혁명이 있듯이, 20세기 후반 비(非)서방국가로서는 유일한 한국의 근대화 성공을 ‘한국혁명’이라 불러 부족할 것이 없다. 1인당 소득이 대한민국보다 높은 나라로 이스라엘, 싱가포르,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가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비(非)서양이 아니고, 싱가포르는 민주화와 시민사회화가 미흡하며, 나머지 나라는 모두 민주화의 초보에도 이르지 못했다. 인도와 중국도 빈곤탈출 민주화 시민사회로의 길은 너무 아득하다. 나머지는 아프리카 중동의 실패한 국가들이거나 북한 미얀마 등 중세신정(中世神政) 같은 폐쇄국가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등장과 같이 정당도 군부도 교회도 외세(外勢)도 아닌 NGO(비정부기구)가 정권을 탄생시킬 만큼의 민주화는 선진국도 꿈꿀 수 없는 혁명이었다. 확실히 우리는 정치민주화와 NGO활동에 있어서는 선진국들보다도 더 역동적인 것을 발견한다. 젊은 세대나 기성세대나 1948년 이후 대한민국의 근대화 혁명을 자랑해야 할 너무나 많은 이유가 있다. 또 남북통일의 민족적 과업도, 동북아시아 중심으로의 꿈도, 선진화(‘善’進化)와 복지사회의 비전도, 대한민국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민주주의’도 ‘인민’도 ‘공화국’도 없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과거와 현재로는 민족의 장래를 개척할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게도 할 말을 해야겠다든가 6자회담에서 우리 뜻을 주체로 진행시키겠다는 발상이 ‘한국혁명’의 토대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5대 강국론'이나 1997년 대통령 선거전 때 김대중·김종필 후보의 5대 강국화 같은 허장성세의 경제 제일주의 발상에서 나온 것이어서는 안된다. 바로 5대 강국론을 정치꾼들이 허풍떨고 다닐 때 외환 금융위기가 폭발했었다. 한 국가의 힘은 경제력·자원력·과학기술력·군사력 즉 하드파워(硬國力)뿐 아니라 외교력·정보력·정치력 같은 소프트파워(軟國力)에다, 무엇보다 지도자들의 신뢰 즉 도덕력까지 합쳐져야 한다. 우리는 서양 기준의 근대화 측면에서는 한국혁명이라 할 만큼 성공했으나, 4대 강국과 겨루기 위한 한국의 힘, 종합국력이라는 점에서는 문제가 많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4대 강국을 상대하기에는 하드파워뿐 아니라 특히 소프트파워와 도덕력에서 상대적 국력 차이는 여전히 크다. 무엇보다 오늘의 우선순위는 한국혁명의 정착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한국혁명의 성공에서 자율적 요인과 타율적 외부적 요인을 냉철히 분석하고, 타율적·외부적 요인을 내면화·자생화하는 노력이다. 이것이 진짜 개혁이다. 민주화는 운동권의 희생만에 의해 이룩된 것인가, 한강의 기적은 관료·기업인·노동자들만의 노력 덕인가, 시민사회화는 NGO의 목소리만으로 된 것인가 등에 대한 통열한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참회 어린 성찰 위에서만 문명사적 기록인 ‘한국혁명’이 정착되고 종합 국력의 획기적 신장으로 결실될 것이다. 그것만이 한국혁명이 제2의 위기를 거쳐 실패한 혁명으로 좌절되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길이다.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前 서울시립대 총장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조선일보 2004. 12. 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