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委’ 엄정 검증해야 - 박효종
	2004-12-07
‘대통령 직속委’ 엄정 검증해야 노무현정부 출범후 목격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가 14개나 만들어졌고, 또 그 직속위원회에서 굵직굵직한 정책 현안을 기획하고 다루는 경우가 일반화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21세기의 국정은 복잡다단하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이 야심차게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면, 전문적 성격을 가진 자문위원회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예산만 1500억원에 달하는 14개 대통령 직속위가 단순한 자문 역할의 수준을 넘어서서 명실공히 정책의 실질적 결정권한을 행사하는 기관이 됐다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마치 플라톤의 ‘전문가공화국’을 상기시킬 만큼 ‘위원회공화국’이 된 것을 두고 바람직한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전문성을 위주로 구성된 대통령 직속위는 효율이 기준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효율과 전문성만이 최고 기준은 아니다. 만일 효율만이 기준이라면, 소수 야당의 ‘쓴말’을 들을 필요도 없고 가시처럼 찌르는 대정부 질문도 제도로 존치시킬 이유가 없다. 삼권분립으로 상징되는 수많은 견제와 균형 장치야말로 비효율을 초래할지언정, 효율을 목표로 삼는 제도가 아니다. 그렇지만 권력은 ‘절대반지’처럼 오·남용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권력의 효율보다 권력 견제의 당위가 선행한다는 것이 민주정치의 핵심이다. 정치문화적으로 보거나 또 실제로 행사하는 권한을 중심으로 볼 때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행정부의 비대한 모습이야말로 한국 정치의 특징이다. 민주화시대의 입법부를 ‘행정부의 시녀’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왜소해진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여당 과반수의 입법부라고 해도 행정부와는 다른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좀처럼 없다.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사법부는 사방에서 공격을 받아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사람처럼 딱한 처지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 직속위가 국정의 ‘로드맵’을 짜는 수준을 넘어서서 정부 부처의 위상을 억누를 정도로 ‘권부(權府)화’한 것은 ‘제왕적 행정부’를 부추기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국회가 예산 통제권을 발동하여 감사원에 대통령 직속위 감사를 요청하기에 이르렀지만, 그 동안은 무풍지대였다. 결국 대통령 직속위는 ‘비선조직’처럼 운영돼 온 셈이다. 비선조직은 민주사회에서는 항상 의혹의 대상이다. 밀실 운영, 즉 음지에서 중요한 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요구하는 ‘투명성’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정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원회라면, 양지에서 일하고 언제나 햇볕을 쬐어야 한다. 견제와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조직은 민주주의 결핍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투명성’은 기업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가치가 아닐까? 기업은 일부 사람들의 이해관계만을 다루지만, 정부는 모든 시민들의 이해관계에 연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집 안의 투명한 어항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와 같은 신세가 된다. 공직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일반 시민들, 시민단체, 야당, 의회로부터 수시로 감시 대상이 돼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까지 대통령 직속위가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국정 핵심 사항을 ‘막후에서’ 결정하는 역할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치외법권 조직처럼 운영돼 왔다면, 크게 잘못된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권한 축소를 포함, 대통령 직속위의 위상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이제부터라도 대통령 직속위는 국민의 세금을 쓰는 만큼 공적 책임을 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정책 입안에 근거가 되는 그 전문적 지식들이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지에 대해 공론의 장에서 엄정한 방식으로 검증을 받아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04. 12. 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