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회의 상근자 MT

광대한 바다, 우리의 꿈 대양해군, 평택 해군작전기지를 다녀와서…

어려운 출발

8월 5일 월요일 아침, 백령도를 향한다는 설레임에 모두들 상기된 표정이었다. 새벽부터 비가 내린 탓인지 약간은 걱정도 되었지만 처음으로 사무국 전체 간사들이 2박3일 동안 MT를 간다는 의미에서 궂은 날씨는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았다. 더구나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 백령도를 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흔치 않은 기회였다. 前해군정훈감이신 시민회의 박찬철 대외협력실장님 덕분에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며 바다 위를 날으는 백령도를 가게 된 것은 필자에게 큰 행운이었다. 효녀 심청이 아버지를 위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를 상상하며 빼먹은 짐은 없는지 아침부터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백령도에 대한 우리의 불타오르는(?) 기대와 설레임은 해군기지에서 날라온 한 통의 전화로 순식간에 꺾이고 말았다. “금일 파고(파도의 높이)가 매우 높아 백령도로 접안(接岸)할 수 없기에 백령도 견학 일정은 취소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들려오는 수화기 속의 굵직한 음성은 우리에게 백령도 앞 바위섬을 산산이 깨부수는 잔인한 파도였고, 간만에 떠나는 여행스케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청천벽력이었다. 한 달이 넘게 기대해온 백령도 견학이 수포로 돌아가자 우리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 앉을 시민회의가 아니다.

사무국은 사무처장님 주도로 비상대책회의에 들어갔다. 사무처장님의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오늘은 반드시 MT 간다!”라는 명명백백한 대선언(?)으로 시민회의 간사들은 기사회생하였다. 어디로 가면 좋겠냐는 질문에 모두들 제 각각이다. 결국, 처음에 계획했던 백령도 답사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써 해군 제2함대 사령부가 있는 평택 해군작전기지를 견학하기로 결정하였다.

아름다운 석양, 떠오르는 서해안 시대

서울에서 오전 10시쯤에 출발하여 서평택을 거쳐 오후 1시쯤 멀리 어렴풋이 서해대교가 보이는 평택작전기지에 도착하였다. 해군 제2함대 소속 ‘김웅’ 소령이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였고 관계자 여러분들이 웃음 띤 얼굴로 악수를 청하였다.

<사진1 서해대교 야경>

바다를 메운 드넓은 평지에 건설된 평택작전기지는 인천 기지의 작전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83년 수로가 좋고 신속한 작전이 가능한 경기도 아산만 평택항을 사령부 후보지로 선정 총7,400억 원을 투입하여 건설한 해군전략기지라고 한다. 함정 120여 척이 동시에 부두에 정박할 수 있는 평택작전기지는 구축함을 비롯한 각종 함정들이 출/입항에서부터 정박, 수리에 이르기까지 ‘원 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곳의 육상작전기지는 지난 6월 연평해전에서 진가를 발휘한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KNTDS)를 이용, 실시간으로 해역 작전세력들을 원격 지휘할 수 있으며, 육상 부대 및 부서 간에는 근거리통신망(LAN)과 광케이블로 연결돼 있다고 한다.

해군 관련 각종 물품들이 전시된 전시관과 강당이 있는 건물에서 예비군 훈련 때나 자주 볼 법한 전형적인 국방홍보물인 해군홍보 비디오와 서해교전에서의 구체적 상황을 담은 영상자료를 보았다. 몇 명은 졸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나름대로 모두들 진지하게(?) 보는 것 같았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 박수까지 치는 것을 보니 재미와 감동이 있었나 보다.  

<사진2 상륙함 고준봉함(함번 681)>

그리고 나서 일행은 애당초 백령도를 갈 때 타기로 했던 고준봉함(LST, Landing ship, tank 대형상륙함)을 견학하였다. 94년도에 취역한 고준봉함에 들어서는 순간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입구에서 장병이 7명이 일렬로 서서 우리에게 ‘필승!’하며 경례를 해주니 순간 필자는 순간 목에 힘(!)이 들어갔다. 고준봉함의 함장(중령)은 함장실에서 고준봉함의 역사와 배의 구조, 기능 등을 시청자료를 통해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일행은 주갑판을 시작으로 4층 함교(조타실) 까지 걸어가면서 배의 내부구조와 기능을 조목조목 함장으로부터 설명들을 수 있었다. 필자 개인적으로 반가운 것은 고등학교 때 절친했던 동창을 고준봉함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세상 좁다고 하지만 수 많은 해군 함정들 중에서 고준봉함에서 9년 만에 친구를 만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얀 얼굴에 깨끗한 피부로 여학생들로부터 언제나 인기 상종가를 달려 주변 친구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했던 친구는 바다 바람에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해군사관학교에 합격하고 나서 졸업식 날 꼭 만나자고 했던 그 친구는 벌써 밥풀떼기(또는 다이몬드?) 세 개가 달린 짬밥 있는 대위가 되어 있었다. 여행 일정상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지만 그나마 연락처를 주고 받을 수는 있어서 필자에겐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득이 되었다.

함대 총길이가 100m가 넘고 차량 700여 톤, 상륙정 200여 톤을 수송할 수 있는 고준봉함을 등뒤고 하고 우리는 구축함인 ‘영주함’를 방문하여 기념 사진을 찍고 한국가스공사 평택생산기지를 향했다.

<사진3 천연가스 평택생산기지 전경>

900만이 넘는 인구에게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평택생산기지는 한국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버금가는 성공한 국책사업으로 꼽힌다. 세계 각지에서 천연가스(NG)를 도입하여 수도권에 공급하는 것은 물론 수출까지 담당하는 평택생산기지를 돌아보며 에너지 자원과 기술이 국가의 경제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를 느낄 수 있었다. 휘발유, 벙커시유 등에 비해 오염도가 극히 낮으며, 새천년의 에너지로 각광 받는 천연가스 산업이 더욱 발전하길 기원하며 일행은 삽교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故박정희 대통령의 비극과 관련되어 있는 삽교호 방조제를 주마간산으로 버스 속에서 바라보며 우리는 삽교호 관광지에서 유명하기로 소문난 함상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함상공원은 해군 퇴역 함정 2척을 이용하여 조성한 말 그대로 함상 공원으로서 동양최초의 군함 테마 파크이다. 함상공원은 해군과  해병의 역사와 문화를 재미있는 인테리어와 시청각 자료 등 여러 시설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이었다.  바다 위에 퇴역한 군함 두 척이 떠있었는데 하나는 상륙함이고 다른 하나는 구축함이었다. 상륙 작전함에는 배 이야기, 세계의 해전사, 충무공 임란3대첩 등의 전시관이 있고, 구축함에는 해군들의 함정 생활모습을 재현한 다양한 체험공간이 있었다.

상륙함에 위에는 유람선에나 있을 법한 함상 카페가 지어져 있었다. 군함 위에서 마시는 진한 커피한잔의 향기는 출동하기 직전 함대 전체 요원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함장의 고독감을 느끼게 하고, 저 멀리 보이는 광활한 수평선은 바다가 간직하고 있는 무궁무진한 꿈과 환상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게 한다.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게 불타는 여름에 바라보는 바다는 언제나 희망과 벅찬 감동이 가슴으로부터 뭉게뭉게 피어나게 한다. 일행은 멀리 바다 풍경을 전망할 수 있는 상륙함 카페에서 잠깐 쉬면서 김웅 소령으로부터 해군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4 함상공원에서의 시민회의 일행>

어느덧 서해 수평선에 낙조가 드리워지고 일행은 해군기지에 있는 숙소로 향하였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교전, 장대한 서해대교와 시원하게 쭉 뻗은 서해고속도로, 서해교전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수 만평의 해군작전기지, 평택 천연가스 생산기지…등 오랜 세월 동안 음지로 취급되었고 침묵으로만 일관했던 서해는 이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을 뿐더러 볼 것도 많은 21세기 한반도의 새로운 정치, 경제, 문화의 場이 되어가고 있다. 2박3일의 백령도 기행은 물거품으로 돌아갔지만 1박2일 짧은 기간의 평택기행은 나름대로 필자에게 새로운 견문을 접하게 하였다.

해상왕 장보고가 중국 대륙과 일본열도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던 서해! 천 이백 년이 넘게 흘려 내려온 장보고의 도전정신을 이제 다시 실현할 때가 되었다. “바다를 지배한 자가 세계역사를 주도한다”는 명제가 변하지 않는 참이라면 한국이 나가야 할 길은 당연히 해양으로의 진출일 것이다.

바다!

그리고 우리의 꿈, 자유!

거친 물살을 가로지르며 세계를 누빌 대한민국 대양 해군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 꿈이 서해에 실현되길 기원하며 필자는 서울로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2002. 8. 7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고영민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