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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03. 7. 2 (수)
- 주 최 :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중앙일보
- 사 회 : 김문환 (서울대 미학과 교수)
- 좌담자
전택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문화경제학 교수)
조희문 (상명대 영화학과 교수)
정희섭 (전 국립극장 공연운영 과장)
김찬동 (문예진흥원 경영혁신위원회 위원)
국가가 나서서 예술을 키우자는 뜻으로 1973년 설립된 문예진흥원(이사장 현기영). 올해 30년이 된 문예진흥원을 위원회 체제로 바꾸어 완전히 민간에 넘기자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문화관광부 산하 단체로 존속해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 이르면 오는 9월 정기국회에 관계 법안이 상정된다. 그러나 이를 곱지않게 보는 시각도 적잖다. 과거 재야문화단체들이 정권이 바뀐 틈을 타 영향력을 키우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인가. 이에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와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가 전문가를 초대해 지난달 25일 중앙일보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다음은 토론 내용의 요약.
사회(김문환):문예진흥원은 1970년대 초 군사 독재 정권인 유신 체제하에서 만들어졌다. 출발부터 한계가 내재해 있었던 셈이다. 그동안 진흥원이 문화예술계를 위해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 온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일각에선 정부 간섭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진흥원을 위원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희문:위원회로 바꾸자는 건 현 체제로는 안 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건데 과연 현재의 진흥원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하는 게 아닌가. 위원회 추진을 선의로만 해석하기 어렵다. 혹 문화예술계의 주도권 다툼은 아닌가 의문이 든다. 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민예총) 대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예총)라는 식으로. 진흥원 체제로도 충분히 건설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김찬동: 진흥원은 올해로 설립 30주년이 됐다. 그 사이 한국 문화는 엄청나게 다변화했다. 따라서 진흥원도 환경의 변화에 맞춰 형식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진흥원은 문화관광부 산하 단체로서, 문화예술계를 위해 사용해야 할 문예진흥기금이 다른 분야로 전용되는 등 독립성을 상당히 침해받아 왔다. 외형은 민간기관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국가기관이나 비슷했다. 그러다보니 문화예술계의 변화를 기민하게 따라잡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기금을 독립적으로 집행하고 사업을 유연하게 운영하려면 여러 인사가 참여하는 위원회 형태가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전택수:조직 원리로 볼 때 원(院)과 위원회는 큰 차이가 있다. 위원회는 예산을 세우고 집행할 때 독립성을 갖는다. 업무도 5~9명의 위원들이 개인적으로 모든 책임을 지면서 집행한다. 반면 원은 민법에 근거해 설립된 기구로 상급 기관(문예진흥원의 경우 문화관광부)의 감독을 받게 돼 있다. 각각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조희문:30년간 지속돼 오면서 진흥원의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관(官)에 의한 개입.간섭을 거론하지만 과거의 관과 지금의 관은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과거엔 무조건 정권에 유리한 쪽으로 끌어갔지만 지금은 관이 서포터(지원자.후원자) 역할을 하지 않는가. 따라서 현재의 진흥원 체제를 당당히 인정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진흥원의 위상과 역할을 유지하면서 보완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떤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서 일해 본 경험으로 보건대 위원회 방식에도 함정이 많다. 영진위의 경우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듣기 좋은 구호를 내세웠지만 문화관광부가 관여하고 간섭하는 건 정도의 차이일 뿐 여전했다.
사회:방송위원회를 봐도 실제로 위원회가 얼마나 독립적이냐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위원회라는 간판만 내세운다고 될 일이 아니고 내용까지도 독립해야 한다.
김찬동: 위원회가 만능이 아닌 만큼 그런 맹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진흥원의 변화는 시대적인 요청이다. 문예진흥기금의 모금과 집행 뿐 아니라 정책도 민간이 수행하도록 하자는 거다. 이를테면 문화관광부의 예술진흥국이 가진 업무를 문예진흥위원회로 옮겨오자는 거다. 위원회 구성도 가능하면 공개적인 방식, 즉 추천위원단 같은 걸 통해 최대한 중립적으로 꾸리려고 한다.
정희섭: 기존의 위원회를 보면 논의는 길게 하지만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무엇보다 공개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어쨌든 현재의 진흥원으로는 안 된다. 조교수는 위원회로의 변화 움직임을 문화예술계의 권력 다툼으로 보는데 그건 낡은 사고다. 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건 급변하는 문화예술의 흐름을 제대로 담아내자는 의도다. 문화예술은 지금 기존의 장르 중심적인 것에서 서로를 넘나들며 퓨전화.다양화하고 있다. 현 진흥원 체제로는 이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할 수 없다. 이미 활동하는 위원회가 제대로 못한다고 해서 우리도 아예 하지 말자는 건 진취적인 태도가 아니다.
전택수:아무리 좋은 제도도 기존의 관습과 괴리가 생기면 혼란이 온다. 기왕의 제도도 중요하다. 그것이 튼튼하게 뿌리내리도록 해보는 것도 괜찮다. 한국은 대부분의 조직에서 최종 의사 결정을 최고위층 혼자서 다 한다. 모든 사람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는 말이 있다. 위원회로 간다고 할 때 이런 점에 과연 자신이 있는가.
정희섭:위원회로의 변화는 이제 문화정책이 제대로 된 철학을 갖추고, 기존의 기구와 문화예술계 지형 전체를 새롭게 바꾸자는 차원이다. 99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설립됐고 영상물등급위원회도 운영 중이다. 이들의 경험을 살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구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회:위원회 문제는 이해관계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 권위주의 시대에 기득권을 누리던 이들이 이를 놓치 않으려는 것도 문제지만 진정한 문화예술인이라면 권력에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사심없는 문화예술인들이 제대로 논의를 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오늘 좌담이 앞으로의 활발한 논의를 위한 첫걸음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