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끌려 다닌 협상
협상타결 소식과 성과 전하기에 급급
연계성 협상 파악 못해 취약한 협상력 드러내

철강 협상 성공? WTO 규범 어긋난 자율적 수출규제
환율개입금지 협의, 잃어버린 20년 일본 답습할지도
미국 의약품 가격 인상, 의료재정 고갈 가속화

한미 FTA 개정 및 철강 관세 협상이 타결된 후, 정부는 미국과의 철강 협상에서 관세 면제를 받는 등 선방했다며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곧이어 그 협상 과정에서 원화 가치 하락을 억제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는 ‘환율 이면합의설’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환율협의는 FTA와 별개라며 부인하지만 넓은 관점에서는 ‘패키지 협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철강 관세를 면제받는 것은 자랑하면서 국제 통상 규범을 벗어난 철강 쿼터에 대해선 어물쩍 넘기려 한다. 이처럼 협상 결과를 투명하게 밝히지도 않으면서 변명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태도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이번 한미 FTA 개정과 철강 관세 협상 결과를 평가하면서, 환율 합의가 일으킬 경제적 파장과 부작용을 진단하고, 아울러 이번 사태를 통해 정부의 통상외교 역량과 신뢰성 측면을 점검하고자 외교통상과 경제부문 전문가를 모시고 긴급좌담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번 한미 FTA 개정 협상 과정에 대해 전반적인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는 “협상과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끌려 다닌 협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짜놓은 판에 한국 정부가 완전히 휘말렸다. 철강 관세는 원래 없던 것인데 FTA 개정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고 미국이 던진 것 아닌가“라고 언급했고, 정인교 인하대 교수 역시 ”이번 협상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통상당국의 발표에는 미국에 양보한 분야의 파급영향 분석이 미흡했고, 평가 자체가 중립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협상 결과에 대해서도 매우 우려하는 목소리였는데, 구체적으로 최병일 교수는 “철강관세를 완전히 약속 받은 것도 아니고 74% 물량까지만 무관세를 약속 받았다. WTO 규범과 어긋나는 자율적 수출규제에 합의한 것이다. 또한 픽업트럭 관세 25%를 2021년에 무관세가 되는 상황은 전세계 어떤 국가도 받아내지 못한 합의였는데, 이를 20년 후로 연장 했다면 수출기회는 완전히 포기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정인교 교수도 “철강 관세를 막았다고 하지만, 기존 반덤핑, 상계관세 등에 대한 언급이 없고, 앞으로 미국의 무리한 무역구제 제도 남용을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고 혹평을 했다.

특히 환율개입금지 협의와 한미 FTA 개정 협상의 연계성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는 “한국정부가 단순히 두 사안의 연계협상을 부정하는 주장만을 확대할 것이 아니라, 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환율조작국은 미국, 일본, EU순이라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며 적극적인 논리적 대응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좌담회 패널들은 정부가 환율개입금지 협의는 단순히 별건이라고 안일하게 치부할 사안이 아니라 향후 파장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신환율전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환율개입금지 협의는 자칫 한국이 잃어버린 20년 일본을 답습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원화가치 절상으로 한국 수출은 초토화되고 금융위기가 재연될지도 모른다”고 심각히 우려했다. 정인교 교수도 “미국이 환율개입금지 메커니즘을 국제적을 도입하려는 이유를 모르고 있단 말인가. FTA 관세철폐보다 몇배 더 큰 파급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부가 이행사항으로 간단히 치부하고 있는 혁신적 약가결정에 대해 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미국의 요구는 지난 2016년 7월 발표된 ‘글로벌 혁신신약 우대방안’이 미국 계열 기업 등 다국적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항으로 개선돼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미국 의약품의 가격을 인상하고 미국 의약품의 독점력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정인교 교수도 “미국산 신약가격을 올려주는 것인데, 의료재정에 미칠 영향을 살펴봐야 한다. 의료재정의 고갈을 가속화시킬 것이 명백하다”고 우려했다. 결론적으로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에서 정부가 협상타결 소식과 성과를 전하기에 급급했고, 미국 정부의 연계성 협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한국 정부의 취약한 협상력이 단적으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최병일 교수는 “트럼프는 통상과 안보를 연계하고, 환율까지 연계하여 협상하려 한다. 한국정부가 안보 따로, 통상 따로, 환율 따로 대응한다면서 서로간의 연계를 부정한다면, 취약한 협상력을 더 약하게 할 따름이다. 트럼프에게 계속 끌려가지 않고 한국의 핵심이익을 지키려면, 분절화된 경제통상외교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