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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견서]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개시 발표에 대한 의견서
	2006-04-28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개시 발표에 대한 바른사회시민회의 과거사진상규명모니터링단(단장 : 박효종 서울대 교수) 의견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 송기인 신부)는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규명 신청 접수 사건에 대해 첫 조사개시를 발표했다. 3개 소위별로 발표한 조사 대상 중 고양 금정굴 사건, 제주 섯알오름 사건 등 한국전쟁 전후에 주로 발생한 집단학살 사건이 382건으로 가장 많았다. 민족독립 사건과 관련해서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 장터 3.1 만세 운동, 반탁 운동가들의 소련 유형 진실 규명 등 3개의 사건이 선정됐고, 인권 침해 사건과 관련해서는 민족일보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이수근 간첩사건 등 3개 사건이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진실화해위가 작년 12월에 발족한 이래 5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처음으로 1차 조사대상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미루어 그간 진실화해위원회 측의 신중한 논의와 숙고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팀장급에 대한 인선을 마치는 등 실무진이 아직도 최종선발이 안된 상태이고 인원 선발 후 관련 업무에 대한 일정 기간의 소양 교육이 필요하다고 볼 때 본격적인 조사는 일정 시간이 지나야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출범 후 지금까지 진행된 활동이 2800여건에 넘는 진실규명 신청사건에 대한 분류작업과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쉽다. 한편 이토록 오랜 기간 숙고하여 선정한 조사대상 중 일부 사건에서 문제점이 지적된다. 1. 중복 및 재조사 문제이다. 제주 섯알오름 사건의 경우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이미 조사를 끝낸 후 피해 사실이 확인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 측은 유족으로 인정받았으나 진상 규명이 부족하다는 피해자 측의 요구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경산코발트 광산 사건도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 진행 중에 있고 이수근 간첩사건과 민족일보사건은 이미 ‘국정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에서’ 2차로 조사 대상 사건에 포함되어 있는 사건이다. 이와 같은 기조사 사건에 대한 재조사나 중복 조사의 경우 인력과 시간의 낭비가 우려된다. 조사 결과가 동일하게 나오는 경우도 문제지만 조사 결과가 기조사 결과와 다르게 나오는 경우 사건 당사자 또는 관련자와의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2. 조사 대상의 형평에도 문제가 있다. 조사 대상 사건 수가 382건으로 가장 많은 집단희생규명위원회 소관의 집단 학살 사건 중 가해자가 국군이나 경찰, 미군, 우익 세력 등에 의한 것이 365건에 달하는 데 비해 접수 사건의 절대 숫자가 적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가해자가 북한군 등 적대세력인 사건이 17건에 불과하다는 것은 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균형추를 맞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3. 민족독립규명위의 조사 대상에서도 적절치 못한 것이 발견된다. 반탁운동가들의 소련 유형에 관한 진실 규명은 그 동안 주목받지 못한 구소련지역의 재외동포사를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충북 황간면 3.1만세 운동과 중국에서의 항일독립운동을 조사 대상에 선정한 것을 보면 진실화해위가 국가보훈처까지 자처하고 있는 듯한 의문이 든다. 독립 운동과 관련해서 이미 국가보훈처가 신청을 받아 유공 여부를 가려내고 당사자와 유족들에게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서 적정한 보상을 해주고 있다. 물론 국가보훈처는 이 과정에서 당연히 해당 사건들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한다. 개인사적 고찰을 통한 총체적이고 입체적인 독립운동사 규명이라는 수식어를 달더라도 진실화해위가 두 사건을 조사 대상에 포함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진실화해위가 과거사 관련 기구 중 그 인력이나 규모면에서 가장 크고 또 이전 과거사 관련 기구들의 활동을 총괄하는 의미가 있는 기관이기는 하지만 이미 결론이 난 사건을 재심하고 여타 기구과 사건 조사가 중복되는 이 같은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번 발표 시기에서도 나타났듯이 접수 사건에 대해 분류와 심의만 하는 데에도 시간과 인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조사인원과 시간의 부족함을 충당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면밀한 조사를 위해서는 산재해 있는 각 과거사 기구 및 관련 기관과의 긴밀한 협조와 관리가 필요할 듯 하다. 국민의 혈세로 180여명이나 되는 인력을 운용하고 있는 진실화해위가 4년(2년 연장 가능)이라는 시간을 그냥 헛되이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진실규명은 지난(至難)한 작업이다. 조사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이 약한 상태이고 수많은 사건을 일일이 조사하려다 보면 인력 부족을 토로할 수 있다. 또 조사대상 중에 길게는 70~80년 전까지 그 시기가 너무나 오래되어 증거 수집 등과 증언 확보가 어려운 부분 등 많은 문제점 때문에 향후 조사 과정에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진실화해위가 내세우고 있는 진실 규명을 통한 화해와 국민 통합이라는 대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보다 신중하고 합리적인 조·수사를 통해 이에 부합하는 활동과 결과물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2006. 4. 27 바른사회시민회의 과거사진상규명모니터링단

장동만	메모 쪽지가 하던 재판 (옛 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과거사위)’는 2007년 1월 31일, ‘70년대 긴급 조치 위반 사건 판결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수구 언론들은 이번에도 사안의 본질적인 의의는 덮어둔 채 사건 관여 판사들의 명단 공개가 옳으니 그르니, 극히 지엽적인 문제에 촛점을 맞추는 포퓰리즘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다음은 필자가 오래 전에 써 놓았던 글 (그 동안 발표할 수가 없었음) 이다. 유신 헌법/긴급 조치법 하에서 한국 사법부 위상의 일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오늘 여기에 싣는다-장동만> D 판사, 이 곳 해외 언론 매체를 통해 그 동안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혁당/민청 학련/고려대 시위 사건 등 여러 공안 시국 사범 공판에 관련된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하고, 한국 사법부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D 판사에게 이 글을 띄웁니다. D판사, 현대 민주 국가에서 왜 입법/사법/행정의 삼권 분립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중 특히 사법부의 기능/역할이 무엇인지, 정치 원론은 펴고 싶지도 않고 또 펼 필요조차 없을 것 같습니다. 정치가 실종된 땅의 정치를 왈가왈부 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인 것과 같이, 총칼의 명령이 곧 법이 되는 현 상황에서 법의 정신이니, 법의 기능이니, 운운 하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D 판사, 상황이 비록 그렇게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또 그 땅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소위 ‘인권의 보루’라고 일컬어지는 사법부가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지, 언제 까지나 그럴 것인지, 한 번쯤 서 있는 좌표를 점검하고 자화상을 들여다 보는 것도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 것은 국가 민족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담론에 앞서, 법조인 개개인의 개인적인 신상과 명예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D 판사, 언제인가 D판사는 저에게 이런 비밀 (?)을 들려준 일이 있습니다. “판결을 어디 우리 판사가 하나?” “그럼 누가 한단 말인가?” ‘(공안/시국) 사건 때 마다 3년, 5년, 7년… ‘메모 쪽지’가 외부에서 날아 온다네. 이상하게도 나에게 오는 것은 모두 홀수이네. 그러면 우리 법복을 입은 사람들은 그것을 앵무새 처럼 외울 뿐이라네.” “그러고도 법관으로서 양심의 가책이라고 할까, 직업인으로서 직무 포기라고 할까, 어떤 갈등을 안 느낀단 말인가?” “어쩌겠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다른 선택이 없는데…” D판사, 언젠가 어떤 큰 시국 사범 사건을 담당, 법관으로서 자신의 소신과는 아랑곳 없이, 이같은 외부의 ‘메모 쪽지’에 따라 판결을 했던 X 판사는 미국에 왔을 때 저에게 그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은 일이 있습니다. “심히 괴롭다. 내가 왜 그렇게 판결할 수 밖에 없었는지, ‘양심 선언’을 써놓고 있다. 때가 오면 이를 세상에 공표할 생각이다”라고. D판사, 옛날 학생 시절 S대 도서관에서 삼복 더위에 웃통을 벗은채 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던 D 판사는 휴식 시간이면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아직 사회악에 물들지 않은 이상주의자로서 우리는 사회 정의에 대해 많은 토론을 벌였고, 특히 D 판사는 법학도로서 앞으로 고시에 패스해 법복을 입게 되면,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열을 올려가며 그 포부를 피력하기도 하였지요. 그러던 D 판사가 오늘 날 법복을 입고 재판관 자리에 앉아서 외부로부터 날아오는 ‘메모 쪽지’에 따라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다니…그저 슬퍼질 뿐입니다. D판사, D판사의 인간적인 고뇌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 세차게 불어오는 ‘외풍’, 그 것을 혼자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것을 섣불리 막으려 하다가는 너무나 큰 희생이 따른다는 것 등… 모든 것을 이 곳에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그렇게 어렵다고 해도, 행정부가 총칼의 명령부가 되고 입법부가 그 총칼의 한갓 거수기가 되어있는 현실에서 ‘인권의 보루’인 사법부마저 그렇게 돌아 간다면 도대체 그 나라가 가는 길이 어디 입니까?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나마 D판사와 같은 정의감 있는 법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고… D판사, 최소한 총칼이 하는 일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감싸주는 일만은 어떻게든 피해야 겠습니다. 총칼이 하는 무지와 억지, 그리고 부정과 과오에 법을 원용 (援用), 이를 법적으로 정당화/합리화 시켜주는 역할만은 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이는 곧 ‘법’이 총칼에 협조/공모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에 법적 뒷받침을 해줌으로써, 민중의 판단을 오도하고 정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 입니다. D 판사, 그러면 이를 위해 지금 그 어려운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메모 쪽지’대로 판결은 하되 판결문(내용)을 건성건성, 요령 부득으로 작성 하십시요. 그리고 거기에 겉으론 나타나지 않는 어떤 함축적인 의미를 담으십시요. 그렇지 않고 ‘메모 쪽지’의 형량을 뒷받침하기 위해, 즉 정당화 시키기 위해, 열심히 육법 전서를 뒤적이는 행위는 마지못한 피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능동적인 협조로 민중들 눈에 비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메모 쪽지’사건, 즉 시국 사범 아닌 일반 사건 판결에 있어 그 형량을 법관의 재량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가능한 한 가볍게 판결 하십시요. 이는 총칼로 ‘양심의 상실’을 강요하는 그릇된 체제에 간접적으로 저항한다는 의미가 있고, 또 역설적이긴 하지만 한 쪽에서 ‘잃어버린 양심’을 다른 한 쪽에서 만회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세째, X판사와 같이 ‘메모 쪽지’ 판결 때 마다 ‘양심 선언’을 작성해 두십시요. 이것은 훗날 새 역사가 펼쳐질 때 D판사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자구책이고, 역사에 대해서는 ‘산 증언’이 될수 있기 때문 입니다. 끝으로 영어 격언, “A Good Lawyer is a Bad Neighbor”를 나름대로 고쳐 쓰면서 이 글을 끝 맺습니다. “A Good Lawyer to the People should be a Bad Lawyer to Them.” <장동만: e-랜서 칼럼니스트 > http://kr.blog.yahoo.com/dongman1936 저서: “조국이여 하늘이여” & ‘아, 멋진새 한국 “(e-book) 2007-02-06

장동만

메모 쪽지가 하던 재판 (옛 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과거사위)’는 2007년 1월 31일, ‘70년대 긴급 조치 위반 사건 판결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수구 언론들은 이번에도 사안의 본질적인 의의는 덮어둔 채 사건 관여 판사들의 명단 공개가 옳으니 그르니, 극히 지엽적인 문제에 촛점을 맞추는 포퓰리즘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다음은 필자가 오래 전에 써 놓았던 글 (그 동안 발표할 수가 없었음) 이다. 유신 헌법/긴급 조치법 하에서 한국 사법부 위상의 일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오늘 여기에 싣는다-장동만>

D 판사,

이 곳 해외 언론 매체를 통해 그 동안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혁당/민청 학련/고려대 시위 사건 등 여러 공안 시국 사범 공판에 관련된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하고, 한국 사법부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D 판사에게 이 글을 띄웁니다.

D판사,

현대 민주 국가에서 왜 입법/사법/행정의 삼권 분립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중 특히 사법부의 기능/역할이 무엇인지, 정치 원론은 펴고 싶지도 않고 또 펼 필요조차 없을 것 같습니다.

정치가 실종된 땅의 정치를 왈가왈부 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인 것과 같이, 총칼의 명령이 곧 법이 되는 현 상황에서 법의 정신이니, 법의 기능이니, 운운 하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D 판사,

상황이 비록 그렇게 어렵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또 그 땅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소위 ‘인권의 보루’라고 일컬어지는 사법부가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인지, 언제 까지나 그럴 것인지, 한 번쯤 서 있는 좌표를 점검하고 자화상을 들여다 보는 것도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 것은 국가 민족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담론에 앞서, 법조인 개개인의 개인적인 신상과 명예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D 판사,

언제인가 D판사는 저에게 이런 비밀 (?)을 들려준 일이 있습니다.
“판결을 어디 우리 판사가 하나?”
“그럼 누가 한단 말인가?”
‘(공안/시국) 사건 때 마다 3년, 5년, 7년… ‘메모 쪽지’가 외부에서 날아 온다네. 이상하게도 나에게 오는 것은 모두 홀수이네. 그러면 우리 법복을 입은 사람들은 그것을 앵무새 처럼 외울 뿐이라네.”
“그러고도 법관으로서 양심의 가책이라고 할까, 직업인으로서 직무 포기라고 할까, 어떤 갈등을 안 느낀단 말인가?”
“어쩌겠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다른 선택이 없는데…”

D판사,

언젠가 어떤 큰 시국 사범 사건을 담당, 법관으로서 자신의 소신과는 아랑곳 없이, 이같은 외부의 ‘메모 쪽지’에 따라 판결을 했던 X 판사는 미국에 왔을 때 저에게 그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은 일이 있습니다.
“심히 괴롭다. 내가 왜 그렇게 판결할 수 밖에 없었는지, ‘양심 선언’을 써놓고 있다. 때가 오면 이를 세상에 공표할 생각이다”라고.

D판사,

옛날 학생 시절 S대 도서관에서 삼복 더위에 웃통을 벗은채 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던 D 판사는 휴식 시간이면 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아직 사회악에 물들지 않은 이상주의자로서 우리는 사회 정의에 대해 많은 토론을 벌였고, 특히 D 판사는 법학도로서 앞으로 고시에 패스해 법복을 입게 되면, 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열을 올려가며 그 포부를 피력하기도 하였지요. 그러던 D 판사가 오늘 날 법복을 입고 재판관 자리에 앉아서 외부로부터 날아오는 ‘메모 쪽지’에 따라 판결을 내릴 수 밖에 없다니…그저 슬퍼질 뿐입니다.

D판사,

D판사의 인간적인 고뇌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 세차게 불어오는 ‘외풍’, 그 것을 혼자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것을 섣불리 막으려 하다가는 너무나 큰 희생이 따른다는 것 등… 모든 것을 이 곳에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그렇게 어렵다고 해도, 행정부가 총칼의 명령부가 되고 입법부가 그 총칼의 한갓 거수기가 되어있는 현실에서 ‘인권의 보루’인 사법부마저 그렇게 돌아 간다면 도대체 그 나라가 가는 길이 어디 입니까?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나마 D판사와 같은 정의감 있는 법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고…

D판사,

최소한 총칼이 하는 일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감싸주는 일만은 어떻게든 피해야 겠습니다. 총칼이 하는 무지와 억지, 그리고 부정과 과오에 법을 원용 (援用), 이를 법적으로 정당화/합리화 시켜주는 역할만은 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이는 곧 ‘법’이 총칼에 협조/공모하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에 법적 뒷받침을 해줌으로써, 민중의 판단을 오도하고 정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 입니다.

D 판사,

그러면 이를 위해 지금 그 어려운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메모 쪽지’대로 판결은 하되 판결문(내용)을 건성건성, 요령 부득으로 작성 하십시요. 그리고 거기에 겉으론 나타나지 않는 어떤 함축적인 의미를 담으십시요. 그렇지 않고 ‘메모 쪽지’의 형량을 뒷받침하기 위해, 즉 정당화 시키기 위해, 열심히 육법 전서를 뒤적이는 행위는 마지못한 피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능동적인 협조로 민중들 눈에 비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메모 쪽지’사건, 즉 시국 사범 아닌 일반 사건 판결에 있어 그 형량을 법관의 재량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가능한 한 가볍게 판결 하십시요. 이는 총칼로 ‘양심의 상실’을 강요하는 그릇된 체제에 간접적으로 저항한다는 의미가 있고, 또 역설적이긴 하지만 한 쪽에서 ‘잃어버린 양심’을 다른 한 쪽에서 만회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세째, X판사와 같이 ‘메모 쪽지’ 판결 때 마다 ‘양심 선언’을 작성해 두십시요. 이것은 훗날 새 역사가 펼쳐질 때 D판사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자구책이고, 역사에 대해서는 ‘산 증언’이 될수 있기 때문 입니다.

끝으로 영어 격언, “A Good Lawyer is a Bad Neighbor”를 나름대로 고쳐 쓰면서 이 글을 끝 맺습니다.
“A Good Lawyer to the People should be a Bad Lawyer to Them.”
<장동만: e-랜서 칼럼니스트 >

http://kr.blog.yahoo.com/dongman1936
저서: “조국이여 하늘이여” & ‘아, 멋진새 한국 “(e-book)
2007-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