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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는 금년에도 삼성, LG, 현대차, SK 등 출자총액이 규제되는 18개 그룹을 지정하여 발표했다. 이들 그룹들은 순자산의 25%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못한다. 기업에서 출자가 규제된다는 것은 다른 회사 주식을 취득하거나, 법인 신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회사의 투자를 제약하고, 외국자본의 주식매집에 의한 적대적 M&A에 대응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연례행사처럼 출자총액이 규제되는 기업집단을 발표하고, 출자규제를 지속해야 하는 것일까? 공정위를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들은 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이 우려된다며 기업들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제도 강화 내지 존속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87년에 출자총액을 규제한 배경을 되새겨 봐야 한다.
당시 은행의 대출심사는 형식적이었고, 기업의 투명성과 지배구조는 무척 취약했다. 많은 기업들은 은행에서 자금을 차입하여 법인을 신설하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함으로서 고용이 늘어나고 새로운 사업에 쉽게 진출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컸지만, 다른 주주의 권익을 침해하거나 큰 그룹들이 은행 돈을 거의 독점하는 사태마저 발생했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97년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부분 해소되었다. 은행은 대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대출하지 않으며, 지배구조와 투명성이 높아지고, 소수주주들의 권리행사 의식도 향상되어 대주주가 독단적으로 회사를 경영하기 어렵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차도 우리나라의 기업에 대한 내외부 감시장치는 거의 미국수준이라고 할 정도이다.
외환위기시 300%를 상회했던 그룹들의 부채비율이 133%대로 하락했지만, 이들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살아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출자규제정책에 따라 여러 계열사들을 하나의 회사로 통합했던 그룹의 경우 예외시한이 도래하면 또 다시 한도초과분을 해소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문제는 출자를 규제하고 재무구조 개선을 중시하다 보니 기업의 투자나 신규고용창출을 저해하는 부작용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인도 등 성장잠재력이 큰 나라는 빠르게 따라오고, 선진국과 기술 및 마케팅 등의 격차는 해소되지 않는데 출자총액제도는 정부에서 추진하는 성장 동력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이번 4·15 총선과 관련하여 각당이 발표한 정책에도 분명하게 이를 폐지하겠다고 표방한 정당이 없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함을 누차 강조해 왔다. 지금과 같이 기업의 투자를 어렵게 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단순히 자산규모만으로 기업의 투자를 제한하는 행정편의주의적 제도로 보여진다. 기업의 투자시기, 영위할 업종 그리고 투자규모를 규제하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
그동안 강화되어온 사외이사 제도, 기업경영투명성,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증권집단소송제도, 금융기관의 대출심사 강화 등은 출자총액규제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들로서 이제 출자총액규제를 지속할 명분과 이유는 사라지고 있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같은 제도는 하루빨리 폐지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