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 > 논평·성명
> 활동 > 논평·성명
지난 23일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되어 자산 규모 2조원 이상의 기업에게 내년 7월부터 적용될 예정(자산 규모 2조원 미만의 기업에게는 적용 유보)인 ‘증권집단소송법안’은 남소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8월 임시국회에서 동법안이 통과되어 시행될 경우, 기업과 경제에 미칠 파장이 우려된다.
증권집단소송제는 분식회계, 주가조작, 허위공시, 부실감사 등으로 주식투자자가 입은 피해에 대해 소송에서 승소하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나머지 투자자들도 동시에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효과적 활용은 기업 투명성의 증대와 이를 통한 기업의 대내외 신인도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같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남소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현재 가열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이번 법안에 포함된 남소방지 관련 조항들이 너무 과다하다는 주장을 하는 반면에 기업계는 국회의장과 여야 정책위원장을 방문하여 소송요건의 강화를 요청하였다.
사실 증권집단소송이 아니라도 주가조작 등을 방지하거나 이로 인한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는 많이 있다. 증권범죄는 금융감독위원회와 검찰에서 적발하여 처벌하며, 그 피해는 민사소송 외에 선정당사자 제도를 통해 다수가 한꺼번에 입을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 소수주주들이 입은 피해구제나 불법행위 예방만큼 중요한 것은 불법행위를 하지 않은 기업이 이러한 제도 때문에 불의의 피해를 입거나, 원고를 제외한 다른 주주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의 법 의식 속에는 이러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너무나 많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검찰과 같은 행정기관의 조사를 받거나 민사소송에 피소되기만 하면 법원의 최종판결 이전에도 마치 위법사실이 확정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여건에서 증권불법행위를 혐의로 기업이 거액의 송사에 말려들면 그 내용의 진위에 관계없이 송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가 폭락, 이미지 훼손, 매출 감소 등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는다. 증권집단소송과는 다르지만, 공업용 우지 사용으로 89년 검찰에 기소되었던 삼양식품(라면)은 7년 후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회사는 화의결정으로 이미 사실상 결단이 난 후였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히 증권집단소송제를 시행중인 미국의 경우를 보면, 소액주주의 권익보호라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소송변호사가 더 큰 실익을 챙겼으며, 재력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 합의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소송 남발을 방지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였고, 그래도 미흡하여 또 하나의 법이 하원을 통과했다.
이번에 법사위 소위를 통과한 남소방지 장치로는 기업이 소송전문가들의 송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분율 0.01%나 시가액으로 원고 50인이 1억원 이상 소유하면 소송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쉽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는 바, 예컨대 원고 50인이 특정기업을 고소하기 위하여 1인당 200만원의 주식을 보유하면 된다.
따라서 이같은 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으로 먼저, 소송을 주도하는 주주들의 대표성을 높이고, 불법행위가 확인된 후 소송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대표소송제기권 수준인 지분율 0.01%를 상향조정하고 1억원 조항은 삭제하여야 한다. 또한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증권범죄를 상시적으로 조사하여 제재를 하므로 소송은 금감위의 조사가 끝난 사건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원고는 소송에서 지더라도 잃을 것이 없는데 비해 피고 기업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으므로 공탁금을 내는 방법도 재고되어야 한다.
이에 시민회의는 일단 증권집단소송제가 시행되면 소송을 당하는 기업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남소방지를 위해 소송허가 요건을 엄격히 하기를 촉구한다. 이를 위해 국회는 여야 양당의 협의를 통해 제도적 장치를 보완, 개선하여 입법화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기업은 이같은 법안이 왜 도입되게 되었는지를 돌이켜 보고, 솔선수범하여 기업의 투명성 제고에 더욱 앞장서야 할 것이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