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 > 논평·성명
> 활동 > 논평·성명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일치된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고영구 내정자를 국가정보원장에 임명하는 것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그동안 권력안보를 위한 초법적 기구로 변질되어왔던 국정원을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에 걸맞은 정보기관으로 만들기 위해 개혁적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엄연한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에서, 그것도 해당 전문 위원회의 인사청문회 이후에 제기된 의견에 반대되는 결정을 내린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인사청문회라는 제도는 왜 존재하는가? 국가행정은 일개 집단이 아닌 4천만 국민의 안위와 미래가 걸린 일이며, 이를 책임질 행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은 마땅히 그러한 무거운 책임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능력과 권위를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러한 직무를 맡게 될 인물에 대한 적합성 여부를 국민이 직접 선출한 입법부가 대표하여 평가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인사청문회인 것이다. 특히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4개 주요 고위직, 즉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그리고 경찰청장 등의 임명에도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취지를 생각해야 한다. 바로 이들 직책이 한때 권위주의적 정권의 시녀로서 국민 대다수의 복리보다 정권안보의 첨병으로 전락했던 전례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국민 대표기관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할 때, 국회 정보위의 일치된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고영구 내정자의 임명을 강행하려는 정부의 태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정부는 국회 정보위가 제출한 의견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들면서 고영구 내정자의 임명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특히 이번에 도입된 4대 주요 고위직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제도의 취지를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현행 헌법하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은 존중되어야겠지만, 대통령 중심제의 모델이자 인사청문회를 최초로 실시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헌법의 규정(Article Ⅱ, Section 2)에서는 ‘상원의 조언과 권고에 의하여 임명한다(Advise and consent)’고 규정하여 애매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그 실제적인 운영에 있어서는 이미 청문회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나오기 시작하면 대통령은 그 지명을 철회하는 것이 관례이다. 또한 이러한 규정과 운영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대통령이 의회의 의견에 반하는 임명권 행사는 위헌일 뿐 아니라 탄핵소추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사청문회의 제도취지를 고려할 때 무리하게 고영구 지명자를 임명했을 경우와 그 지명을 철회하고 다른 인사를 재임명하는 경우를 비교했을 때 과연 어떤 것이 더 합리적인지 노무현 대통령은 심사숙고 해야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평소 국회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장 임명과 관련하여 임명권은 대통령이 갖고 있다는 형식적 논리에 치우쳐 정부와 국회의 힘겨루기로 이 사안을 돌파하고자 한다면, 인사청문회는 단지 시간낭비에 불과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평소부터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중시한다고 공언해 온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신뢰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만일 정부가 국회의 일치된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고영구 내정자에 대한 국정원장 임명을 강행한다면, 이는 인사청문회의 제도 취지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는 국정원장 임명이 가지고 있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노무현 대통령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