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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계 투자펀드인 크레스트 증권의 SK(주)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M&A) 움직임은 재계 서열 3위인 SK그룹이 불과 1천 700억원을 투자한 외국계 펀드에 송두리째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외국계 기업에 의한 인수합병(M&A)에는 문호가 활짝 열려있는 반면,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는 각종 법규들로 제약을 받고 있는 우리 규제체제의 취약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지적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공정거래법의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전기통신사업법의 ‘외국인 투자제한제도’와 같은 역차별적인 국내 투자관련 규제의 개선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확대되고 있다.
이번 SK(주)와 크레스트 증권 간의 경영권 갈등은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외국인 투자제한제도’에 의해 희비가 엇갈린 생존 게임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SK(주)가 자사주를 포함하여 31.88%의 우호지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7.6%가 출자규제 한도에 걸리고, 자사주 10.41%도 의결권 행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의결권이 가능한 13.41%로 14.99%의 크레스트의 공세에 맞서야 했다. 지난 2001년말 공정거래위원회가 외자유치 촉진을 이유로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한 기준을 ‘외국인 지분 30%’에서 ‘10%’로 낮춤으로써 출자규제의 예외를 두었다. 다행히 국내 지분 의결권을 부활하는 이 예외 조항으로 인해 SK(주)가 7.6%의 의결권이 되살아나게 됨으로써 최소한의 적대적 인수합병 (M&A)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전기통신사업법의 ‘외국인 투자제한제도’는 국내 통신사업자 보호라는 취지와는 달리 14.99% 지분의 크레스트가 국내 기업이라도 외국인으로 간주되는 15%지분을 초과 매입하면 SK(주)의 SK텔레콤에 대한 방어력을 크게 상실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크레스트가 0.01% 매입 시 SK텔레콤은 위성 DMB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등 신규 기간통신사업 진출경쟁에서 참여자격을 상실하게 되는 등의 피해를 받게 된다. SK(주)는 향후 크레스트의 추가적인 매입여부를 촉각을 세워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크레스트가 우호적인 장기투자자로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사업계획 재조정, 자본배분의 최적화, 기업 지배구조 개혁 등을 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에 SK(주)를 비롯한 재계 일각에서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그러나, 펀드는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IMF 시절 타이거펀드가 지배구조의 개선을 요구하면서 SK텔레콤에게서 1조원의 수익을 챙겼고, 98년 아팔루사가 장기투자 명목으로 대우통신을 사들인 후 거액의 차익을 누리고 1년도 채 안되어 떠나버린 사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설사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아니더라도, SK텔레콤 지분 매각 후 SK 주가가 3배가량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여 일부에서는 크레스트가 향후 SK텔레콤 지분 매각을 SK(주)에게 요청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또한, 국내의 규제를 교묘하게 활용하면서 최대한의 수익창출을 꾀할 것으로 보여 우호적인 크레스트의 입장 표명에 대해 적절한 대응 방안 없이 안심만 하고 있는 것은 과거 펀드의 전례를 답습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시민회의는 일각에서 주장되듯이 기업지배구조가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기업의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시장개방,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세제 제도의 합리화, 시장 친화적 가치관의 정립 등 실로 다양한 구조적 여건들이 동시에 개선되어야 하고 지배구조는 그러한 큰 그림 속에 한 일부분 일뿐이다. 따라서 기업 지배구조의 개편을 통해 기업 가치를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시도는 단견이라는 것이 시민회의의 견해이다.
시민회의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이 가지고 있는 기업가치 증대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글로벌 경쟁시대와 글로벌 자본이동 시대에 외국자본에 대해서는 인수합병이 전면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반면 국내 기업들에게는 여러 가지 역차별이 작동되고 있어서 국내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치러 오히려 기업의 잠재적 가치를 훼손시키는 상황이 현재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시민회의는 국내기업들의 손발을 묶는 이런 역차별적인 출자총액제도와 같은 규제제도는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