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 > 논평·성명
> 활동 > 논평·성명
검찰은 8일 소위 세풍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과 국세청이 조직적으로 정치 자금을 모금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권의 부패상과 도덕 불감증을 다시 한 번 드러내는 것이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소위 세풍 사건이란 지난 97년 대선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지지율 급락으로 자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자 이후보의 동생 희성씨와 서상목 한나라당 전 의원이 이석희 전국세청 차장에게 모금 협조를 요청했고 이 전 차장은 국세청의 고위 간부들과 협의하여 23개 기업에서 1백66억원을 모금한 사건을 말한다.
이 번 검찰 조사는 이석희씨가 차수명 전 한나라당 재정위원장에게서 당 재정위원중 고액의 기탁금을 미납한 사람들의 명단을 넘겨 받아 모금에 나섰고, 당시 신한국당 재정국장이던 김태원씨와는 돈 받는 방법과 영수증 처리 방법까지 상의 했으며, 배재욱 당시 청와대 사정비서관이 임채주 전 국세청장을 만나 한나라당을 도와 달라고 부탁한 사실을 확인하였고, 임 전 국세청장으로부터는 이회창 전 총재가 격려전화를 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전 총재가 전화의 구체적인 목적과 모금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지 않았다. 검찰 조사의 목적은 불법 모금의 배후와 추가 자금 조성 경위 등을 밝히는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서인지 적극적으로 수사를 벌이지 않은 것이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회성씨가 소환에 불응한다고 해서 조사를 하지 않았고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해서도 서면조사나 전화 조사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이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는 수사를 하겠다는 검찰의 그동안의 주장에 맞지 않는 처신이다.
한나라당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현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과 국세청이 조직적으로 정치 자금을 모금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야당 탄압이라며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얼마전 대북송금사건에 있어 정치적 해결을 거부하고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를 관철시키던 태도와 너무나 다르다. 한나라당은 국민 앞에 이 사건에 대해 진실된 사과와 반성의 태도를 보여야 하며 관련자들은 검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여 진실 규명에 조금이나마 일조해야 한다.
앞으로 검찰은 이번 세풍 사건과 관련하여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정치적인 고려 없는 철저한 수사를 하여 그 배후 세력을 철저히 밝혀내 이와 같은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회성씨를 소환 조사해야 하며 이에 불응할 경우 강제 구인장을 발부 받아서라도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 또한 이회창씨도 조사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또한 국세청을 통해 모금한 자금을 받은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에 대해서도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그 명단을 밝혀 경계를 삼도록 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두 측근에 의한 뇌물 수수 사건인 나라종금 문제와 같이 정치권의 금전과 관련한 부패는 그 뿌리가 깊다. 오늘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가 국회에 “고위공직자뇌물의제법”제정을 촉구하면서 입법청원한 것은 바로 이런 현실적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공직자는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질 수 없다. 수억원의 돈을 부정하게 받았음이 확실히 밝혀졌음에도 소위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 5급 이상의 공직자가 일천만원 이상의 돈을 수수한 경우 그 돈을 무조건 뇌물로 보도록 한 이 법안은 바로 이런 경우에 국민들이 느끼는 허탈감과 반감에 기초한 법안이다. 법은 상식이다.
이러한 사건의 재발 방지는 정치인들의 도덕성 회복과 전반적인 정치 구조 개혁, 그리고 국민들과 시민 단체의 철저한 감시 등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와 제도 개선에 의해 뒷받침될 때 담보될 수 있다. 정치권 전체의 각성을 촉구한다. 아울러 국회는 “고위공직자뇌물의제법”의 조속한 입법으로 반부패 척결의 의지를 확실히 증명해 주기를 기대한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